[영화]'개봉 첫회 선물'도 인터넷속으로…예매시스템 활성화

  • 입력 2002년 4월 29일 17시 26분


요새 나는 영화가 개봉되는 날 극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처럼 두리번거리던 버릇도 없어졌고, ‘할로우 맨’처럼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도 사라졌다.

속 모르는 사람이야 홍보하는 영화마다 잘돼서 그런가? 하겠지만, 정작 내가 홀가분해진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성을 부렸던 선착순 영화 경품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영화 마케팅 수단이 다양해지며 개봉일 첫회 선착순 극장 관객에게 경품을 주는 행사가 생겨났다. 매주 개봉 영화가 십 여편 가깝게 쏟아지는 치열함 속에서 한 명의 관객마저 아쉬운 터라, 이 방법은 처음에는 그런 대로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흥행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과잉 경쟁을 낳고, 급기야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이어져 버렸다.

초기에는 영화 티셔츠나 음반만으로 충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디오 세트나 해외여행 상품권, 심지어는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로 바뀌는 등 경품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수고가 흥행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면 모르겠지만 곧 ‘상관없음’이 확인되면서 마케팅 담당자들은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영화는 보지도 않고 경품만 타가는 전문 ‘경품꾼’도 고민거리였다. 개봉 전날부터 아예 돗자리 펴고 밤을 새는 진풍경이 벌어지는가 하면, 값비싼 경품을 따라 극장을 옮겨 다니는 주말 ‘철새족’까지 생겨났다.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늘 똑같은 얼굴과 상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심하면 몸싸움까지 해야되는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굳어진 잘못된 ‘관행’도 영화 시장의 변화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모양이다. 몇 달 전부터 극장에서 영화경품을 나눠주는 행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물론 마케터들이 스스로 옭아맨 밧줄을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멀티플렉스의 증대와 예매 시스템의 활성화로 표를 사기 위해 극장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현저히 적어진 것도 그 이유. 때문에 일부러 전시효과를 노려 경품을 나눠주던 것도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대신 네티즌 영화인구가 늘어나면서 개봉일 극장에서 소요되던 경품들이 지금은 영화와 연계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벤트 경품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쨌거나 개봉일이 전처럼 두렵지 않은 요즘은 극장에서 매번 마주치던 얼굴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극장 앞에서 밤새워 가며 경품을 기다리던 그들이 어쩌면 이제는 인터넷의 바다를 열심히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희주·영화홍보사 '젊은기획' 대표 hee-ju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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