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했던 ‘당구로 먹고살기’… PBA는 한줄기 빛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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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반년, 상금 4000만원 정경섭

프로당구(PBA)투어에 출전하고 있는 정경섭을 4일 서울 강남구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에서 만났다. 사진기자의 요청에 한참 동안 카메라 앞에서 이런저런 자세를 보여주던 그는 “사진 촬영이 어색하고 어려웠다. 역시 당구가 제일 쉬운 것 같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프로당구(PBA)투어에 출전하고 있는 정경섭을 4일 서울 강남구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에서 만났다. 사진기자의 요청에 한참 동안 카메라 앞에서 이런저런 자세를 보여주던 그는 “사진 촬영이 어색하고 어려웠다. 역시 당구가 제일 쉬운 것 같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 프로, 10년 뒤에도 당구만 치고 살 거야?”

당구 선수 3년 차, 무명 선수였던 정경섭(40·사진)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며 가족과 친구들을 설득하던 그였지만 “평생 당구만 치면서 제대로 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상처로 다가왔다. 자신을 비롯해 당구 선수들을 여럿 후원하던 은인의 직언이라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선배 당구 선수 중에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한 사람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눈앞이 깜깜했죠. ‘10년 뒤 네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요.”

2009년 서울당구연맹에 등록하며 선수로 데뷔한 정경섭은 당구장 관리, 전기기사, 대리운전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며 당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다. 당시 훈련할 시간을 확보하기도, 대회 출전 경비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던 그는 “그때는 스스로 당구 선수라고 소개하기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오전 6시 반에 일어나 전기 시공 일을 하다 오후 5시에 퇴근하면 당구를 가르쳤다. 레슨이 끝나면 8시인데, 하루 훈련 시간이 채 2시간도 안 됐다. 지방 대회를 나가면 경비도 필요하고 그 기간엔 일을 쉬어야 했는데 그러면 다음 달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고 고단했던 나날을 떠올렸다.

지난해 11월 들려온 프로당구협회(PBA) 출범은 당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 신부에게 ‘1년’을 약속했다. “딱 1년만 해보고 PBA 1부 투어에 못 들어가면 당구를 완전히 접고 아내를 먹여살리는 데 ‘올인’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아내가 이해해주지 않았으면 지금 당구 선수를 못 했겠죠.”

올해 4월 진행된 트라이아웃에서 PBA 1부 투어에 합류한 뒤 정경섭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6월 PBA투어 파나소닉오픈 8강, 8월 웰뱅 PBA 챔피언십 준우승 등의 성적을 거둔 정경섭은 누적 포인트 8위, 누적 상금 9위(4000만 원)를 기록하며 당구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어엿한 ‘프로 당구 선수’가 됐다. 하루에 2시간 훈련하기도 어려웠던 그는 이제 하루 7시간 이상 당구 훈련에만 매달리게 됐다. 최근에는 16일 시작되는 PBA 6차 투어 대비를 위해 오후 11시 이후 야간에도 훈련을 한다. 그는 “전기기사로 일할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밤에 당구를 쳐본 적이 거의 없다. PBA투어는 야간 경기가 많아 컨디션을 맞추기 위해 야간 훈련 시간을 늘리는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9월 결혼해 가장이 된 정경섭은 “당구 선수 생활 10년 만에 당구만 치면서 살게 됐다(웃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이 정도면 ‘제대로’ 살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웃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pba 투어#프로당구협회#정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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