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에어비앤비[횡설수설/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A 씨와 부인은 부산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사업을 하고 있다. 3년 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빈방을 외국인 숙소로 제공한 것이 시작이었다. 사업이 잘돼 지금은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 5채를 얻어 리모델링해 숙소를 늘렸다. A 씨 부부는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이런 종류의 일을 재미있어 하는 데다 노후에 적지 않은 돈까지 벌고 있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A 씨 부부의 숙소는 외국인에게만 빌려 줘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그제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열고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을 상대로 한 숙박 공유 영업을 내년 상반기에 허용해 주기로 했다. ‘한국형 에어비앤비’ 사업의 길이 열린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한국지사에는 올해 1월 기준 현재 호스트 2만 명, 등록숙소 4만6000개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도시지역에서는 외국인 투숙객만 허용되고 내국인 대상은 불법이다. 하지만 이 경계가 사실상 무너진 지 오래다. 작년 국내 에어비앤비 시설 이용자 290만 명 가운데 70% 가까운 200만 명이 내국인이었다. 이용자도 불법인 줄 모르고 이용하고, 사업자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속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내국인 상대 도심 숙박공유사업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반쪽짜리 허가라는 비판이 벌써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는 서울 지하철역 반경 1km 내에 있어야 하는 데다 집 전체를 빌려 줘서는 안 되고 본인이 거주하는 집의 빈방에 국한된다. 한 플랫폼 사업자가 관리하는 호스트는 4000명을 넘지 못하도록 했고 호스트당 영업 일수도 연간 최대 180일로 한정했다.

▷외국의 숙박 공유 사업을 보면 에펠탑 근처 아파트에서 태국 시골의 허름한 집까지 다양하다. 빈방이 아니라 집 전체를 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급호텔 수준도 있고 인근 모텔보다 싼 곳도 있다. 관광 진흥이나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역시 문제는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이다. 정부는 기존 숙박업계에 대해 세금 혜택을 준다거나, 불법 숙박업소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고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도 않고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다.

▷2014년 한국에 진출한 공유차량 서비스 우버는 국내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로 1년을 못 버티고 철수했다. 숙박공유 역시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을 피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숙박공유가 제대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2의 타다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에어비앤비#규제 샌드박스#숙박공유사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