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의 갯마을 탐구]〈23〉돌미역 함부로 따면 경찰서행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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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잰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하는 해녀할머니는 성난 낯빛이다. 해변에 이르자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뭍으로 나오라”며 소리를 질렀다. 갯바위 주변에서 미역과 톳을 뜯던 관광객들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바다 임자가 따로 있어요? 주인도 아니면서 왜 그러세요?” 항변했다. 해녀할머니는 “돈 들여서 일구는 사람이 주인”이라며 맞받았다. 경찰에 신고한다는 으름장에도 관광객들은 못 들은 척하며 계속 하던 일을 했다. 해녀할머니는 나무그늘로 물러나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무단으로 채취한 상당량의 미역과 톳을 압수한 후 관광객 두 명을 경찰서로 데려갔다.

동해안의 많은 어촌은 돌미역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해녀할머니가 해초류를 뜯던 관광객을 완강하게 제지한 이유다. 울산 제전마을의 해안 어귀를 돌아가면 물속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 갯바위가 산재해 있다. 딱방개안, 가마돌, 가지방, 갈매기돌, 깐드방, 금도기, 단추방 등 수많은 갯바위가 하얀 포말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다. 수심 1, 2m 아래에 있는 바위 이름을 주민들은 줄줄이 왼다. 위치와 수심까지. 그럴 수밖에 없다. 어민들의 생존이 걸린 텃밭이기 때문이다. 4∼6월 사이 미역을 채취하여 1년을 살아간다. 겨울에는 여러 날을 물속에서 미역바위를 긁어내는 작업을 한다. 가구당 200만 원 이상의 경비를 지출하며 미역바위를 청소한다. 이런 작업을 하지 않으면 다음 해 미역 생산량과 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울산의 어촌에서 장기간 주민들과 생활하며 해양민속을 조사하던 필자는 이장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았다. 해안 단속을 위해 제작한 조끼를 줄 테니 입고 다니라는 것이다. 카메라와 수첩을 끼고, 해안에서 살다시피 한 필자였기에 무단 채취 단속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열혈 ‘명예 어촌계원’이 됐다. 외지인이 무단으로 해산물 채취하는 장면을 목격할 때면 달려가서 바다에도 주인이 있음을 열변했다. 마을의 지선어장에 대한 독점권이 어촌계에 있다고, 바다를 가꾸기 위해 많은 돈과 노동력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설명을 듣고 물러났다.

현재의 어촌계는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전국적으로 조직됐다. 정부는 어촌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협동조직에 연안에 대한 배타적 이용권을 부여했다. 어민 생존 배려 차원에서 어촌이 공동으로 연안을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어민공동체는 조선시대에 어망계(漁網契), 포어계(捕魚契) 등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어획물의 공동 판매 및 출자 등 근대적인 규약과 조직을 갖춘 어업계가 출현했다. 이처럼 어촌계는 오래도록 어촌의 질서를 지켜온 자율공동체다. 물론 수익금 분배, 회계처리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 어촌계도 부지기수다. 일부 부정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국 어촌을 지탱하는 주춧돌이 어촌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글 앞머리의 일화를 도시인의 입장에서 야박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어촌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정성스레 가꾼 텃밭의 농작물을 관광객이 침범해 가져가는 꼴이다. 어촌 인심 탓할 일만은 아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돌미역#해녀#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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