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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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스물하고 일곱. 아직 이십대다. 올해도 이십대의 시간을 숨차게 보내고 있다. 여름인 탓도 있고.

주변인이라고 말하는 청소년기에는 이십대가 되면 애매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십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도 주변인처럼 살고 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성년자도 아니고 완벽하게 독립한 성인도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독립했다지만 경제적으로 완벽한 독립을 이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도 매일 듣다 보면 그 의미가 흐려진다. 그중 하나가 나이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모임을 가든 나이는 빠지지 않는 주제다. 처음 만난 사람도 이름 다음으로 물어보는 것이 나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속해 있는 모임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덕분에 이십대라는 숫자는 언제나 화젯거리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제일 좋을 때예요. 그 나이를 마음껏 즐겨요’ ‘그때 연애 많이 해야 돼요’ ‘내가 지금 그 나이면 학교에 다시 가겠어요’ 등등. 현실의 나는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황한다. 듣는 사람의 상황이 척박하면 상대방의 말도 빙글빙글 돌려 듣기 마련이다. 그리고 비비 꼬인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대답은 할 수 없고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생활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언니들이 부러웠고 중학교 때는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교 언니들이 멋있어 보였다. 고등학교 때는 일찍 퇴근하는 젊은 선생님의 뒷모습을 교실에서 넋 놓고 바라봤다. 이십대를 넘기니 삼십대 선배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이런 내가 부럽다고 말했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지금 당장은 며칠 밤을 새워도 큰 타격 없는 체력을 부러워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지금과 다를 것 없다면, 이십대 대부분을 만족감에 보냈더라면, 불덩이 같았던 연애사에 대한 그리움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똑같이 말할 것이다. 그때가 좋은 때라고, 그러니 마음껏 즐기라고.

본의 아니게 나이로 관심을 받으며 생겼던 고민은 잘 늙는 방법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과 별개로 숫자에 맞게 나이 들고 싶다. 나잇값의 긍정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잘’의 의미는 직업적으로 인정받고 마음에 맞는 동반자를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금쪽같은 자식을 낳겠다는 드러나는 생활에 대한 의미라기보다 오로지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내면의 것들이 잘 늙었으면 싶은 것이다.

양질의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존경받는 집단에 속한 것이 훌륭한 어른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안다. 어른이라는 권력을 휘두르는 행패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어른의 표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고민은 깊어진다.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나도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된다. 누구나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진짜가 되는 것은 어렵다.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며 산다. 이 모든 것은 조금이라도 진짜에 가까워지기 위함이다.

미국의 소설가 어슐러 K 르 귄은 나이 드는 과정 중 어떤 걸 여러 번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뭔가를 배우게 된다고 했다. 소설가로서의 기술적인 부분에 관해 이야기할 때 했던 말이지만, 분명 나의 생활에도 대입할 수 있다. 이런 고민을 잊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뭔가를 배우지 않을까. 어느 이십대의 고민이 모든 이십대의 고민은 아니지만 누구나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쯤 한다. 이런 고민의 첫발을 내디뎠다면, 그리고 그런 이십대의 생활이라면 삼십대가 되어도 사십대가 되어도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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