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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농구감독서 비즈니스맨으로, 또다시 ‘새로운 승부’ 앞에 선 최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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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농구감독서 비즈니스맨으로, 또다시 ‘새로운 승부’ 앞에 선 최희암

동아일보입력 2013-11-04 03:00수정 2013-11-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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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4>
한 대학 농구부 숙소 앞에 소녀 팬 수백 명이 낮이나 밤이나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 ‘오빠’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까악” 하는 비명소리를 쏟아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이다.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 분)은 연세대 농구 선수 이상민의 ‘빠순이’(열혈팬)로 나온다.

“실제로 토요일 체육관에는 5000명이 넘는 여학생 팬이 몰려 우리가 훈련하는 것을 봤다.” 그때 연세대 농구부를 이끌던 최희암 전 감독(58)의 회상이다.

정작 최 전 감독의 선수 시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휘문고 졸업반 때 명문대에 스카우트되지 못해 입학시험을 치른 뒤 연세대에 입학했다. 신선우 박수교 등 국가대표로 활약한 대학 동기와 함께 1978년 현대 창단 멤버로 입단했지만 주로 벤치를 지키다 해병대로 군 복무를 마쳤다. 1980년대 중반 현대건설 자재부에 입사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1년 넘게 근무하다 무장 강도를 만나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반전은 1986년 31세 때부터 시작됐다. 연세대 감독을 맡은 뒤 16년 동안 팀의 전성기를 이끈 것. 그의 명성도 높아갔다. 1994년 농구대잔치 우승이 하이라이트였다. 최 전 감독은 “내가 총각인 줄 알고 대시했던 여성 팬이 무작정 만나자고 해 아내와 큰아들을 보낸 적도 있다”며 웃었다. TV 속옷 광고를 찍고 모델료 3000만 원을 받았던 것도 이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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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는 사장님으로 불린다. 2009년 11월부터 중국 다롄에 있는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동사장(董社長·대표이사)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감독을 맡았던 프로농구 전자랜드의 자매회사 고려용접봉 홍민철 회장의 권유로 중국법인의 생산과 영업, 대리점 업무 등을 총괄하고 있다.

“‘스포츠 감독이 잘할 수 있을까’란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잘 안되면 ‘역시 별 수 없네’라는 말을 들을까 부담이 컸죠.”

최 사장은 농구 감독과 기업 경영자가 사람 관리와 솔선수범, 비전 제시와 동기 부여 등이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한다. “선수들의 실수를 용인하고 기다리는 인내심, 위기가 닥쳐도 표정 관리로 팀원들의 심리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도록 하는 배짱을 배웠던 게 큰 자산이 됩니다.”

“최선이 아니라고 포기했다면 이런 영광은 없었을 겁니다. 차선이라도 이루려고 늘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어요.” 운동선수는 흔히 내가 최고라는 의식에 사로잡히기 쉽다. 스타 출신은 명장이 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최 사장도 동의한다. “직장 생활로 조직을 경험하면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됐어요.”

그의 리더십 철학은 “장점을 극대화하라”는 것. 그의 애제자이자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단독 선두인 SK의 문경은 감독(90학번)은 “난 수비는 정말 못했는데 감독님께서 슈터의 강점에 집중하도록 격려해 주셨다”고 했다. 최 사장은 감독 시절 우수 선수 영입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초등학교 대회까지 찾아다니며 어린 유망주에게 빵을 사줘가며 공들인 결과였다.

타임머신에 올라탄 듯 좋았던 옛날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가벼웠던 최 사장의 목소리가 “회사 살림살이”를 묻자 무거워졌다. 그는 부임 후 연간 매출을 50% 넘게 늘려 2년 연속 300억 원을 넘기는 기록을 냈다. 그가 한국에서 잘나가던 농구 감독이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그 덕도 봤다. 농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인 중국 시장에서 평소 접촉하기 힘들었던 거래처인 중국 조선소 고위직 임원들이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 한결 수월하게 계약을 성사시켰다. 감독 때 발품을 팔았듯 1년에 넉 달 넘게 중국의 주요 성(省)을 안방 드나들 듯 출장을 다니며 113개에 이르는 거래처를 관리했다.

“중국에는 ‘술 안 마시는 자와는 마음을 열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영업하면서 독한 중국술을 주는 대로 다 받아먹어야 하죠. 덕분에 주량은 늘더군요. 식사 대접을 할 때는 무조건 많이 시켜서 남겨야 해요.”

그러다가 올 들어 STX그룹의 부도 위기라는 암초를 만난 것. STX다롄조선으로부터 3800만 위안(약 66억 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49개 협력업체로 구성된 STX채권단협의회 공동 대표가 된 최 사장은 사태 해결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STX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정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과 접촉하며 해법을 찾고 있다. “한국에서 건너온 20, 30대 근로자만 해도 1000명이 넘어요. 애꿎은 젊은이들의 대량 실직 사태는 피해야 할 텐데….”

그에게는 감독 시절부터 변한지 않는 게 있다. e메일 주소에 늘 ‘cow55’를 쓴다. 1990년대 미국 프로농구에서 6차례나 우승하며 역대 최강으로 불린 시카고 불스와 자신이 태어난 1955년을 조합했다. “월 실적을 달성했을 때의 쾌감은 농구장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했을 때의 감격 못지않아요. 나이를 잊게 하는 긴장감을 즐기고 있답니다.” 코트에서 수많은 역전승을 거두며 탁월한 승부사로 이름을 날린 그는 또 새로운 도전 앞에 서있다. 옛날 그의 모습처럼 위기를 넘길 수 있기를 빌어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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