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권재현]우리는 모두 호모 미미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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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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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문화부 차장
권재현 문화부 차장
깜짝 스타가 된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가 기존 스타 중 누구를 닮았다는 평판에 대한 소감이다. 한때는 “누구 닮았다는 소린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일뿐”이라는 답이 많았다. 요즘엔 “그분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거나 “말만 들어도 영광”이라는 답이 많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배우의 본질과 관련해 이 질문을 한번 파고들어가 보자. 배우는 누구인가. 본질적으로 흉내 내는 인간, 라틴어로 호모 미미쿠스(Homo Mimicus)다. 가장 오래된 연극론으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모방의 동물이기에 연극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갈파했다. 키케로도 “연극은 인생의 모사(模寫)요, 관습의 거울이며, 진리의 반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셰익스피어 역시 햄릿의 대사를 통해 “연극의 목적이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향해 거울을 들어 올리는 일”이라고 선언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따라서 배우는 세상살이에 매몰돼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 배우들은 이를 쉽게 망각한다. 스타가 되는 순간 자신을 모방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모방의 주체가 아니라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초래한다. 혼탁한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선망의 대상이 되면 쉽게 깨질 수밖에 없다. 자크 라캉이 지적했듯이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행동의 모방이 아니라 욕망의 모방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한 선망은 혼자 좋아할 때가 아니라 여럿이 같이 좋아할 때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개별 팬 단위로 좋아할 때와 팬클럽 단위로 좋아할 때 열기의 차이가 여기서 발생한다.

과거엔 이런 욕망의 범위가 작았다. 최진사댁 셋째 딸의 미모는 건넛마을 총각들의 애만 태웠다. 대중매체가 발달한 요즘은 전국 단위로 퍼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경 너머 지구 반대쪽으로도 손쉽게 전달된다. 문제는 선망의 대상은 하나인데 그를 선망하는 사람의 수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점이다.

르네 지라르는 이렇게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대한 갈증이 폭력을 잉태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욕망과 폭력의 메커니즘을 이론화했다. 그렇게 증폭된 갈등 수위가 통제 불능의 상태가 오면 어떤 한 사람에게 온갖 죄를 뒤집어씌우고 집단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희생양이론이다.

사람들은 희생양이론이 고대사회엔 들어맞을지 몰라도 개명된 현대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방욕망의 고삐를 거침없이 풀어 놓으라 권하는 고도 자본주의 시대에 이 폭력 메커니즘의 희생양은 오히려 점점 더 늘고 있다. 학교폭력에 희생되는 학생들, 팬들의 악플에 자살하는 연예인들,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견디다 못해 투신한 대통령….

이들 중 가장 아이러니컬한 존재가 대중스타들이다. 과거엔 일상의 부조리를 거울처럼 비추던 존재가 그 일상의 부조리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배우들이 호모 미미쿠스로서 자의식을 되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우가 호모 미미쿠스의 역할에 충실할 때 모방욕망의 늪에 빠져 살면서도 자신들이 모방하는 인간임을 깨닫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비춰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
#뉴스룸#권재현#호모 미미쿠스#자의식#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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