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인권을 생각합니다]연예인 자살 사건 보도와 인권

  • 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45분


주제: 연예인 자살 사건 보도와 인권

“자살방법 상세히 묘사, 모방 부추길 우려”

《탤런트 안재환 씨가 최근 자살로 추정되는 변시체로 발견된 뒤 일부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들의 선정적 보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부인 정선희 씨의 실신 모습이나 빈소를 찾은 연예인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현장 중계하는가 하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거나 사채업자로부터 감금 협박당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경쟁적으로 내보냈다. 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숨졌다는 자살 방법까지 자세히 묘사해 모방 자살자가 나오기도 했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3일 ‘연예인 자살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정성진(전 법무부 장관)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황도수(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사회=황유성 독자서비스센터장》

방송-인터넷, 선정성·사생활 침해 지나쳐

원인 규명-대책 마련 등 심층보도 힘써야

―최근 일부 매체를 보면 연예인은 죽음마저 상품화된다는 느낌입니다.

▽정성진 위원장=연예인 자살 사건 보도를 보면 선정적이고 추정적인 경향이 뚜렷합니다.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다루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자살 방법까지 상세히 전하는 것은 자살을 유도할 우려까지 있습니다. 정확성이 떨어지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보도는 사회적 비건강성을 확산하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윤영철 위원=부인이 실신한 모습이 화면에 그대로 나오고, 지극히 사적이라고 할 유서 내용까지 공개되는 등 유족의 사생활 침해가 심각했습니다. 자살 동기도 가정 불화설이니 자금 압박설이니 하는 추측 보도가 많았습니다. 자동차 안에 연탄불을 피운 위치와 술병이 뒹구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가 하면 어떻게 죽었고 고통은 어느 정도인지 묘사하는 대목 등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도수 위원=언론중재위원회의 ‘시정권고 심의기준’은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도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인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폭넓은 예외를 허용해 문제입니다. 연예인은 공인(公人)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감안하면, 이런 예외 규정은 마치 ‘무엇이든 보도해도 좋다’고 선정성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더구나 유족이나 주변 인물 등 제3자가 취재 대상으로 마구 보도되는 모습은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큽니다.

―안 씨 사건 보도 이후 모방 자살 사례가 생기는 등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이 큽니다.

▽윤 위원=연예인 자살 사건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충격과 함께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자살 동기를 선정주의와 상업주의 시각으로만 다루면 비슷한 동기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도 그와 같은 고민을 가졌는데 결국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수많은 변수와 다양한 상황을 무시한 추측 보도가 난무한다면 모방 효과를 낳을 우려가 큽니다.

▽황 위원=유명인, 특히 연예인의 경우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니 보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지요. 자살 동기와 방법 등에 대해 대중이 궁금증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봅니다. 다만 관련 보도를 할 때 전문가의 진단을 덧붙이고 다양한 시각을 함께 소개한다면 독자나 시청자들이 주관에만 빠져서 섣불리 판단하는 사례를 예방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 위원장=연예인이 공인적 성격을 갖는다고 하지만, 보도의 범위나 한계와 관련해서는 공익과 사익의 경계가 문제된다는 판단입니다. 이번 사건을 봐도 부업과 사채 등이 자살과 관련해 언급됐는데, 보도의 경계가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익이 아니라면 언론도 보도를 자제할 필요가 있겠지요. 상품화라는 특성상 연예인이 약자로 노출되기도 하니 보호 대상으로서의 측면도 있습니다.

―연예인 등 유명인의 자살 사건은 어떻게 보도해야 좋을까요.

▽윤 위원=유족과 주변 사람들이 받을 충격과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감안한다면 보도에서 피해가야 할 대목이 분명해집니다. 무엇보다 자살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를 사회적 문제로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살 전에 보이는 징후를 알리고 치료 방법과 자살 충동을 극복한 사례를 소개하거나 다양한 전문가 프로그램이나 상담서비스를 적극 안내 홍보하는 예방적 보도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정 위원장=사실과 흥미보다는 밑바닥에 깔린 원인을 찾아내고 대책을 마련하는 등 심층적 입체적 보도가 바람직하겠습니다.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치명적인 내용을 드러내는 보도는 자제하고,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품격이 요구됩니다.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을 유린하는 보도에 대해서는 유가족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과감하게 제기하고, 정부도 관련 위원회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윤리 기준도 더 강화해야 합니다.

▽황 위원=사회적 병리 현상이라는 측면을 감안한다면 자살이란 심리적 구금 상태, 즉 제도적 경제적 개인적으로 도무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취하는 마지막 선택이 아닐까요. 이들이 사회적 좌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언론뿐만 아니라 정부가 적극 대처해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자살자가 급증했던 경험에 비춰 최근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정부가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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