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피서로 인기 끄는 실내 빙벽타기

  • 입력 2007년 6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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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바일을 힘차게 찍으며 실내 얼음벽을 오르고 있는 한영민 씨(오른쪽)와 서경식 씨.
아이스바일을 힘차게 찍으며 실내 얼음벽을 오르고 있는 한영민 씨(오른쪽)와 서경식 씨.
《등반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바위와 얼음을 번갈아 타는 혼합등반이다. 그것이 전 세계 산악인들이 하나같이 알프스나 히말라야 등 눈 덮인 고산을 찾는 이유다. 그곳에선 트레킹, 암벽타기, 빙벽등반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은 높이가 무려 4500m나 된다. 안나푸르나 북서벽은 4000m, K2 남쪽 암벽은 3200m에 이른다, 유럽의 알프스 몽블랑 수직벽은 3960m이고 석회암인 아이거수직북벽은 1830m의 높이로 우뚝 서 있다.

한국 산악인들은 복 받았다고 할 만하다. 봄 여름 가을엔 북한산 인수봉(810.5m), 도봉산 선인봉(708m) 등 전국 곳곳에 있는 바위산을 오를 수 있다. 그뿐인가. 겨울엔 얼어붙은 폭포를 탈 수 있다. 설악산 토왕성 빙폭이 단연 으뜸이다. 3단 수직의 320m 높이. 초짜들은 어림없고 고수들이나 오를 수 있다. 이 밖에 설악산엔 소토왕 빙폭(95m) 대승폭(120m) 소승폭(70m)도 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북녘에도 빙폭을 오를 수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요즘엔 여름에도 얼음벽을 탈 수 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입구에 있는 실내 빙벽장 오투월드(O2World)가 그곳이다. 세계를 둘러봐도 실내 빙벽장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 아시아에선 유일하다. 자칭 ‘산에 미친 사람’인 배창순(60) 씨가 2005년 11월 100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 20m(폭 13m) 높이의 수직 1개면에 8m 높이의 3개 빙벽으로 돼 있다. 지난해 7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빙벽장으로 등재됐다. 얼음만 300t이 넘고 한 달 전기료가 수백만 원이 넘게 나온다.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막상 높이로 따지면 52m밖에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규모다.》

20m 수직벽인 오투월드의 실내 빙벽장은 강원도 강촌 유원지 부근의 구곡빙폭(70m)엔 못 미친다. 하지만 경기 남양주의 가래비빙폭(30m)에는 비견된다. 가래비빙폭은 얼음벽을 타는 초보자들의 훈련 요람. 한국의 빙벽타기 마니아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걸음마를 배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몰려 잘해야 한두 번밖에 타지 못한다는 게 약점. 더구나 겨울 한철만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오투월드가 빙벽타기 마니아들의 욕구를 단숨에 해결해 준 셈이다. 게다가 자연빙벽은 많은 사람이 동시에 오르면 무너질 위험이 있지만 인공빙벽은 그럴 위험이 거의 없다.

# 바위와 빙벽 타는 맛, 완전히 다르다

요즘 바위꾼들은 장마가 밉다고 한다. 암벽이 미끄러워 바위 타는 것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근질근질, 온몸의 미세 근육이 우우우 일어선다. 꺼끌꺼끌한 바위 잔등의 손맛! 수직 벽을 따라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짜릿함! 비가 오면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이럴 땐 실내 암장이나 실내 빙벽장을 찾는다.

암벽타기 45년, 빙벽타기 4년 경력의 이흥수(62) 씨는 “바위와 빙벽 타는 맛은 완전히 다르다. 바위는 손맛으로 타지만 빙벽은 얼음조각이 부서질 때의 짜릿한 맛으로 탄다. 자연빙벽에서는 얼음이 무너져 내릴까봐 큰 동작을 할 수 없지만 실내 빙벽장에선 마음껏 큰 동작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빙벽타기 9년 경력의 패션디자이너 한영민(40) 씨는 “아이스바일(손도끼 모양의 빙벽용 피켈)로 얼음을 찍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다. 암벽은 팔과 다리근육을 많이 쓰지만 빙벽은 어깨근육을 주로 쓴다. 한번 실내 빙벽장에 올 때마다 1∼2시간(10∼20회 오르내림) 정도 즐기는데 시간가는 줄 모른다”며 웃는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채정석(34) 씨는 “실내빙벽을 탄 지 1년 됐다. 남들이 잘 안하는 운동일뿐더러 한여름에 덜덜 떨면서 즐길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다. 직업상 어깨근육을 많이 쓰는데 빙벽을 타서 그런지 VDT 증후군 같은 건 전혀 없다”고 예찬론을 편다.

암벽 경력 40여 년의 서경식(64) 씨는 “인생은 50대부터 상실의 삶을 산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암벽과 빙벽을 번갈아 타다 보면 젊은이들처럼 다이내믹한 삶을 살 수 있다. 60대는 1주일에 2번 정도(한 번에 4, 5회 오르내림) 빙벽타기를 하면 딱 좋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충고한다.

# ‘피서+운동+짜릿함’으로 기쁨 3배

절벽은 산악인들에게 거대한 놀이동산이다. 그들은 그곳에 한땀 한땀 수를 놓는다. 바윗길을 타며 얼음길을 오른다. 바윗길은 언제나 그대로다. 누군가가 한 번 길을 내면 몇 십 년이 지나도 거의 똑같다. 북한산 인수봉엔 바윗길이 60여 개나 있다. 도봉산 선인봉엔 40여 개가 있다. 미국 요세미티 계곡의 거대한 화강암절벽 엘 캐피탄(2695m)엔 1000개가 넘는 길이 있다. 엘 캐피탄은 수직 바위만 1086m나 된다.

얼음길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물로 그린 그림’이나 마찬가지다. 얼음은 날씨에 따라 그 모양과 크기가 수시로 변한다. 얼어붙은 폭포는 해마다 그 높이와 형태가 다르다. 하루에도 오전과 오후는 물론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똑같은 길이라도 처음 오를 때와 다음에 오를 때의 상태가 다르다. 실내빙벽은 아예 버섯모양의 오버행 등 여러 모양을 만들 수도 있다. 그만큼 코스가 무궁무진하다.

오투월드의 최미숙 강사는 “여름철 실내빙벽 타기는 ‘피서+운동+짜릿함’으로 기쁨이 3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쓰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몸의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스트레칭 동작이 반복돼 디스크나 오십견 같은 것은 저절로 치유가 된다”고 설명한다.

산에 오르는 것은 ‘무당의 신들림’과 같다. 바위나 얼음벽을 타는 것은 ‘작두날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아지경.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르니차르는 2000년 10월 6일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오른 뒤, 스키를 타고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 걸린 시간은 딱 5시간. 하지만 그가 내려온 눈밭 길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얼음벽 타기도 그렇다. 끊임없이 새 길을 내지만 그 길은 금세 사라진다. 사람 사는 것도 비슷하다. 바닷가 모래밭에 끊임없이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 쓰고….

▽실내빙벽을 타려면=1시간에 1만5000원(장비대여료 포함). 초보자 강습은 평일반(4주 20시간 화 목요일) 25만 원, 주말반(4주 8시간 토요일) 15만 원, 특별반(12시간, 시간 선택 가능) 25만 원, 일일 체험반(3시간) 5만 원. 각각 장비대여료 포함. 방한복 꼭 챙겨야. 02-990-0202, www.O2O2.co.kr

사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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