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페미니즘 어떻게 공존했나…‘대중독재와 젠더 정치’

  • 입력 2006년 7월 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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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우월주의가 뚜렷한 파시즘과 여성해방을 주창하는 페미니즘의 동거는 어떻게 가능한가.

독재정치의 이면에는 대중의 공모가 숨어 있다는 대중독재론을 발전시켜 온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5∼7일 강원 평창에서 ‘대중독재와 젠더 정치’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를 연다.

미국과 독일, 영국, 스웨덴, 폴란드, 한국 등 6개국 17명의 학자가 참석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20세기 독재 치하에서 여성을 ‘수동적 희생자냐, 적극적 공범이냐’로 보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가부장제의 대상이 아닌 복합적 현실의 주체로서 여성을 그려내는 시도를 펼친다.

발표자들은 근대적 독재체제가 여성에게 가부장제하의 전통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참여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동의와 지지를 끌어냈다고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성적 정체성을 희생하는 대신 모성의 주체로서 여성을 고양시키는 역할의 수용 또는 반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수많은 신여성이 봉건적 가부장제의 탈출구로서 일제 파시즘에 매혹됐던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영국 파시스트 연합의 여성활동가’를 발표하는 염운옥 한양대 교수는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파시스트 조직에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파시스트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 파시즘’으로 변모했음을 추적했다. 클라우디아 쿤츠 미국 듀크대 교수는 나치독일의 치하에서 독일 여성들이 남성우월적 나치즘의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유대인과 아프리카 출신 독일인, 집시 등을 인종적 타자로 만드는 작업에 적극 가담한 가해자이기도 했다고 고발한다.

알프 뤼트케 독일 에어푸르트대 교수는 남성의 육체적 표상이 나치독일 시절 잘 단련된 근육질 전사상에서 동독시절 처진 뱃살과 체모를 드러내는 남성상으로 변화하는 외형적 단절 밑으로 권력의 헤게모니에 포섭된 대중의 열망이 반영돼 있음을 포착한다.

이 밖에 ‘중국 문화혁명기 대자보에 나타난 성’(미하엘 쇤할스 독일 룬트대 교수), ‘스탈린시대 소비에트 여성의 세력화와 착취’(캐런 피트런 미국 켄터키대 교수), ‘식민지 조선에서의 국가와 가족과 여성성’(김규현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등이 발표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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