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랑새가 왔구나”…96세 피천득, 딸 서영씨-외손자 맞아

  • 입력 2006년 2월 1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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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를 좋아하는 게 공통점이지요.” 피천득 선생은 한국에선 처음 연주회를 갖게 된 외손자 스테판 재키 씨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저명한 재미 물리학자인 딸 서영 씨는 아버지의 수필 때문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사진 촬영은 물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강병기  기자
“둘 다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를 좋아하는 게 공통점이지요.” 피천득 선생은 한국에선 처음 연주회를 갖게 된 외손자 스테판 재키 씨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저명한 재미 물리학자인 딸 서영 씨는 아버지의 수필 때문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사진 촬영은 물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강병기 기자
13일 노(老) 수필가 금아 피천득(琴兒 皮千得·96) 선생이 23년째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에는 그가 오매불망 애틋해하고 그리워하는 손님이 찾아 왔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딸 서영(60·미국 보스턴대 교수·물리학) 씨와 바이올리니스트인 외손자 스테판 재키(20·하버드대 3년) 씨였다. 선생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3년 만에 찾아 온 외손자를 껴안았다.

재키 씨는 1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첫 국내 연주회를 갖는다. 선생은 “최근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얘 연주를 못 볼까봐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몰라.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다행이야”라며 밝게 웃었다.

선생의 외동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수필집 ‘인연’의 세 장 중 한 장을 ‘서영이’로 이름 붙여 딸에 대한 글로 채웠을 정도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물리학자 로만 재키 씨와 결혼해 미국에 살고 있는 서영 씨는 미국 물리학계에서 손꼽히는 학자다.

“딸이 소학교 다닐 때 6년 동안 내가 늘 학교에 데려다 주었어요. 큰 다음에는 딸과 함께 눈이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도 걷곤 했지. 딸이 미국에 간 뒤로는 고적해서 못 살겠더라고…. 그래서 정년도 3년 앞당겨 교수 생활을 마쳤지요.”

그의 딸에 대한 사랑은 외손자 재키 씨에게도 이어졌다. 그의 방 벽은 외손자의 연주회 포스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은 외손자와 영어로 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는다.

재키 씨는 이번 협연에서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 곡은 금아 선생이 외할아버지 집을 찾은 일곱 살배기 재키 씨에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며 레코드로 들려주었던 곡이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의 사진과 글을 제게 보여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어머니를 주제로 할아버지가 쓰신 에세이도 봤는데, 할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재키 씨)

작품에서는 물론 인터뷰 때마다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버지가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수필에 나오는 서영의 이미지를 깨기 싫어서였을까. 서영 씨는 “나는 공인이 아니다”며 한사코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피했다. 간혹 아버지의 딸 자랑이 늘어질라치면 고개를 내밀고 “Enough, enough(충분해요)”라며 아버지에게 눈을 흘기곤 했다.

지난해 5월 둘째 아들 수영 씨(서울아산병원 부원장)와 중국 상하이를 여행했던 선생은 요즘도 제자들과 함께 산책에 나선다. 외손자의 연주회에 누구와 동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크게 웃으며 “애인도 없는 데 누구랑 가지? 딸하고 제자들하고 함께 갈 테야”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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