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아미스타드

  • 입력 2000년 4월 5일 20시 59분


《서울대 법대 안경환교수가 쓰는 '법과 영화사이'의 전문을 매주 연재합니다. 동아닷컴에 올리는 '법과 영화사이'는 동아일보 의 지면 제약으로 실리지 못한 부분까지 모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을 졸업한 안교수는 미국법 및 미국의 역사 전문가입니다. 안교수는 '법과 영화'에 대한 조명을 통해 영상시대에 법의 이념이 어떻게 구현되어 가고 있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해드릴 것입니다.》

◇아미스타드(스티븐 스필버그감독, 1997년)

'영화는 사상의 지배자는 아니나 풍속과 여론의 지배자이다.' 프랑스의 사학자 마크 페로(Marc Ferro)는 이렇게 주장한다. "텔레비전은 화상을 가진 토스터 기계다." 미국의 헌법학자 카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의 현대문명론의 카피 구절이다. 바야흐로 영화와 텔레비전이 다스리는 이미지의 왕국이 도래하였다. 영상민주주의의 시대가 뜨면서 문자의 세계가 영상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미지는 거짓을 모르는 참된 문자라는 주장마저 세를 얻고 있다. 문자의 상징이던 법도 영상의 침입 앞에 무릎꿇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역사를 만든 법도, 역사를 기록한 법도, 영상이라는 새로운 사관(史官)의 해석을 고대하고 있다. 바야흐로 영상이 명실공히 법과 사상과 역사의 지배자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거의 영화 〈아미스타드〉(1997)는 이러한 영상법의 시대가 임박해 있음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영상으로 쓴 노예들의 반란▼

자유와 태양을 향한 대장정이라는 미국의 건국신화의 계곡에는 검은 복병이 매복해 있다. 인종 문제는 미국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약점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면서 타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나설 때마다 반문 당하게 되는 약점이 바로 흑인문제이다.〈아미스타드〉는 이렇듯 미국의 원죄인 흑인 노예문제를 허만 멜빌의 《베니토 세리노》(Benito Cereno, 1856) 이래 고전적인 주제의 하나가 되어온 선상반란과 함께 엮어 미국사의 암실에 한 줄기 섬광을 끌어들인 작품이다.

1841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유럽의 노예거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작품은 이러한 미국의 선구적 업적을 영상으로 재조명하는 시도이다. 전 유럽이 제국주의와 중상주의의 시녀가 되어 날뛰던 시절에 적어도 미국의 법원만은 인간의 모습을 바로 보았다는 자부심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아프리카 영국의 보호령 시에라 레온 인근 해안에는 노예매매를 위해 세운 유럽인의 요새가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요새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모든 유럽의 노예상이 공권력의 비호 아래 포획한 아프리카 토인을 신대륙에 팔아 넘겼다. 멘데어 권의 부족 추장 씽케는 동료 부족들과 함께 유럽인의 포획물이 된다. 짐승으로 매매되어 포르투갈 국적의 악명 높은 노예선 테코라에 실려 스페인령 쿠바의 하바나까지 운송되어 온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된 이들은 두 개의 대양을 건너는 긴 항해 중에 절반 이상이 죽어 고기밥 신세가 되었다. 목숨을 부지한 44명의 화물인간은 웃돈을 치른 서인도 농장주에게 매각되어 《아미스타드》(La Amistad)호에 선적된다. 이들 아프리카 산 화물인간들은 "우정"이라는 위선의 선명(船名)에 도끼를 던지며 반란을 일으킨다. 항해에 필요한 두 사람만 남기고 스페인 선원들을 모두 잔인하게 살해하고 태양을 가리키며 해가 뜨는 "동쪽으로" 가자고 명령한다.

자유를 향한 동진(東進)의 항해를 계속하던 중에 식수를 구하러 뉴욕 주 롱 아일랜드 근처의 섬에 들리려다 미국해군에 의해 나포된다. 이들 흑인의 지위와 법적 처리에 관해 여러 뉴 헤이븐 소재 연방지방법원의 재판이 있은 후(1939)에 항소법원을 거쳐(1840)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1841)로 자유의 몸이 되는 과정을 2시간 반으로 압축한 기록이자 역사 드라마이다.

▼미국史 그늘에 '한줄기 빛'▼

자유라는 지극히 원초적인 정의를 되찾는 법의 과정은 지극히 복잡하고도 더디다. 연방검사는 아프리카 야만인들을 살인죄로 처벌할 것을 주장하고, 스페인정부는 조약을 근거로 '화물'의 인도를 요구한다. 미국해군은 연방법상의 보상규정을 들어 재산의 분배를 요청하고 농장주는 이들이 막대한 대가를 지불한 사유재산임을 주장한다. 이렇게 복잡한 이른바 문명세계의 법 절차를 태양과 사막과 사자와 공생하던 순박한 아프리카 인이 이해할 리 없다. 판사라는 직책을 '추장'으로 밖에 통역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하늘과 같은 존재인 추장의 선언을 다시 심사하는 또 다른 추장이 있다는 이야기는 오로지 속임수로 밖에 비치지 않겠는가? 검은 지도자 씽케와 미국변호사들의 교감 과정은 원시적 정의감이 제도적 이성과 단계적으로 결합해 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법은 문화와 이성의 상징이다. 그 문화와 이성이란 원시적 정의감을 순치, 수용함으로써 설득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존 퀸시 애담스(John Quincy Adams)가 직접 대법원의 변론에 나선다. "법정에서는 사연을 가장 잘 전달하는 쪽이 이기는 법이다. 우리는 그들의 존재만 알고 있을 뿐, 그들의 사연은 전혀 모르고 있지 않는가?" ("In courtroom, whoever tells best story wins the case. What is their story?" We know what they are, but not who they are.) 집무실에 핀 "아프리카 바이올렛"의 향훈을 음미하던 애덤스는 이들 아프리카 자유인의 사연을 미국의 법정에서 훌륭하게 재구성해낸 것이다.

▼아프리카 자유인의 사연 법정에서 재구성▼

인류의 역사가 법을 통한 인간의 해방의 역사였다면 새 역사를 열기까지 장구한 세월에 법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계속되었다. "위대한 자유의 문서"라는 미국 연방헌법은 노예 탄생 당시에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고 노예매매를 금지하였을 뿐 노예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흑인노예는 법적으로 '재산'(property)일 뿐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백인의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한 인구수를 산정하는 기초자료로만 백인의 5분 3의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 간주한다는 기이한 문구를 위대한 자유의 문서의 한 구절로 남겼다. 흑인 노예가 재산이 아닌 사람의 신분을 얻기 위해서는 '온전한' 사람들의 내분이 필요했다. 피의 남북전쟁을 거친 후에 비로소 이들 아프리카 인들도 법적으로 사람임을 선언 받게 된 것이다.

식민지 시대 미국은 노예제를 합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고 유럽 전역에 걸쳐 노예제는 상업적 동기로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조달한 노예를 거래하는 식민지 미국의 법과 관행은 영국으로부터 상속받은 코몬로(common law)의 일부였던 것이다. 미국이 독립한 얼마 후인 1807년 연방법으로 노예의 매매를 금지했다. 일부 주는 연방정부가 성립하기도 전에 이미 노예제를 폐지하기도, 자주의 영토 내에 들어온 노예를 정기적으로 해방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아미스타드 판결 당시 미국 전역에 걸쳐 노예의 매매(slave trade)는 금지되었으나 노예제 자체의 합법성 여부는 주마다 달랐다. 이 사건의 재판이 행해진 뉴욕과 코네티컷 주에서는 노예제는 이미 폐지되었었다. 검사는 아프리카에도 노예제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전쟁, 부채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노예제는 세계 어느 구석에서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제도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 판결은 노예제 자체에 대한 판단이 아니었기에 검사의 주장은 남부의 정서를 고려한 연방정부의 정치적 발언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자유와 태양을 향한 인간의 서사시 ▼

전직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판사들 앞에 선 것은 이 사건의 비중을 가늠케 하는 증거가 된다. 마치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연상시키는 무려 여덟 시간에 걸친 구두변론을 담은 총 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변론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자유의 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그의 변론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미국적 이상에 호소함에 초점을 맞춘다. 판결문을 쓴 조셉 스토리판사의 말을 빌자면 '강렬한 수사와 신랄한 풍자'의 극치이다. 대법원은 아미스타드호 의 흑인들은 어느 나라의 법에 의해서도 자유인이었고, 이들은 불법적으로 납치되었기에 노예의 신분과 재산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스페인 법에 의해서도 이들은 자유인이다. 불법적으로 체포, 납치, 수송된 자유민이다. 이들이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해 행한 잔혹한 방법은 유감스런 일이나 불가피했던 자구행위였다.

이들의 선상 반란은 '자연권'의 행사이자 정당방위라는 변호사의 주장을 정면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나 형사책임은 불문에 붙이기로 한 것이다. 자유와 태양을 향한 인간의 서사시라는 영화가 전하고자 장중한 메시지는 전편을 통해 삽입되는 흑인의 흠밍과 노래, 율동, 배경음악, 장례의식에 편승하여 장중한 비애감을 더해 준다. "태양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해로는 절묘한 문학적 아이러니이다. 태양의 아들, 맨몸으로 사자와 싸운 전사인 그가 태양의 품을 향해 동으로 돛을 단 항해는 결과적으로 죽음의 땅을 향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해로가 된 것이다.

영화와 법적 사실과의 부분적인 차이는 영화가 새로운 유형의 사료라면 기존의 사료를 해석할 정당한 권한의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재판을 통한 자유의 선사'가 중심이 된 이 드라마에는 그러한 재판을 탄생시키는 사회의 갈등과 정치적 기류를 전달함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스페인 대사는 미국 대통령에 대고 행정권이 통제하지 못하는 법원은 "자격이 없는 법원"이라는(Incompetent Court)라는 촌평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법원은 마치 인형처럼 제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라고 대통령은 맞받는다. 은연중에 11살 짜리 소녀 이사벨라 2세가 '통치자'인 스페인의 낙후된 사법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구라파의 정치인과 지식인에게 경악과 찬탄을 유발시킨 미국 법원의 보습니다. 알렉시스 도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명저《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1835)의 구절을 연상시킨다. "미국에서는 조만간 소송으로 발전하기 않는 이른바 '정치적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선을 앞둔 반 뷰렌 대통령이 남부의 정서에 영합하기 위해 대법원에 상고한 정치적 결정을 스페인 정부의 압력으로 돌리는 대법원의 판사, 남부의 대변인으로 노골적인 경고와 압력을 행사하는 존 칼훈(John Calhoun) 전 부통령, 노예해방 운동세력과 기독교인의 결합 등등 당시 역사의 여러 단층을 스치듯 조명하면서 사려 깊은 관중의 지적욕구를 자극한다.

▼'아미스타드'의 몇가지 각주▼

영상으로 쓴 법의 역사기록, 영화 〈아미스타드〉에는 몇 가지 각주가 달려있다. 바바라 체이스(Barbara Chase -Riboud)라는 작가는 감독과 영화사를 상대로 표절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소설 "사자의 메아리" (Echoes of Lions, 1988)에서 제시한 캐릭터를 영화에서 무단으로 차용했다는 주장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저술하는 이른바 '역사소설' (historical novel)의 저작권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쉽지 않은 논란거리이다. 어쨋든 이 소설은 아미스타드 판결의 이면에 숨은 흑인통역과 여성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미국의 정의의 시스템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을 부각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1973년 낙태할 권리를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으로 인정한 획기적인 판결(Roe v. Wade)의 판결문을 대법관 해리 블랙먼 (Harry Blackmun)이 영화에 직접 출연하여 강제로 자유를 박탈당한 아프리카인이 자유민임을 선언하는 판결문을 낭독했다.

이런 각주의 에피소드들은 모두가 영화가 풍속과 여론, 그리고 사상의 지배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포로 요새를 폭파하는 작업을 지위한 영국군 장교가 문제의 요새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위선의 의식으로 마무리된다. 법이 위선이고 그 위선의 우상이 파괴된 후에도 거짓과 위선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칼날 같은 메시지일 것이다.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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