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감사하다[내 생각은/남상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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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등교하자, 옆방의 동료 시니어 교수님이 물어보셨다. “상곤, 한국의 너의 부모님은 괜찮으시니?” 순간 나는 이 교수님이 분명 나와 내 부모님을 염려하는 선한 의도의 말인지를 알면서도 뭔가 좀 기분이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일부러 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내 부모님이 계시는 곳은 괜찮다고 합니다.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가 2월 말이었다. 31번 환자 이후, 한국에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하루 1000명 씩 증가하던 때였다.

외국에서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을 통해 한국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조국이 멸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일까? 이게 정말 사실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서 몇 번의 검색을 통해서 확인해보거나, 며칠이 지나면 그 뉴스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적이 꽤 많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기사를 외신으로 주로 접하게 되었다.

환자 한 명이라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고 일일이 역학조사를 해내는 질병관리본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확진자 수가 줄기 시작했다. 드라이브스루(Drive-Thru) 검사와 같은 혁신적 방식이 도입되었다. 해외동포를 정부 전세기로 무사히 데려오고, 14일간의 격리 후에 성공적으로 일상으로 보낼 수 있었다.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마스크를 확보하여 일주일에 2장씩 국민 모두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외신의 한국에 대한 걱정스러운 눈초리는 서서히 그 톤이 바뀌어 갔다. 그리고 확진자 수가 줄면서 한국의 위기관리능력을 칭찬하고 한국의 방역 방법을 배우자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과 방역에 있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었던 것을 꼽았다. 민주국가에서 한국이 팬데믹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모델이라고 극찬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다시 한국 기사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실이 아닌 기사들이 많이 있었고, 여전히 한국은 너무나도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태였다. 무엇보다 사력을 다해 방역을 하고 한 사람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정부와 질병관리본부를 비난하는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른 보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 즈음 분명한 것은 한국의 확진 환자가 줄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필자가 일하는 학교에서 이번 학기를 마칠 때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라는 방침이 정해졌다. 며칠이 지나자 학교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의 대표를 남기고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또한 재택 강의를 위해 학교에서 자료를 챙겨가라고 했다. 내가 학교에서 강의자료를 챙기고 있을 때, 한 달 전 내게 한국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셨던 시니어 교수님이 열린 내 방 문틈으로 인사를 하셨다. “상곤, 몸조심하고 무탈하게 잘 지내렴. 그리고 너희 나라 코리아 정말 대단하더라. 우리 미국이 너희 나라처럼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하고 투명하게 일하는 너의 나라 정부가 정말 멋지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시니어 교수님도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시더니 짐을 챙겨 학교를 떠나셨다.

미국에서 외국인 학생과 이민자로 있었던 17년의 고단함이 녹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지금 미국은 사재기로 음식을 구할 수 없으니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이나 한 병 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에 친한 친구와 함께 온라인으로나마 한잔하려면.

정부와 질병관리본부, 보건 의료당국과 헌신적인 의료진들, 간호사분들, 약사분들,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의 보여주신 모든 시민분들의 수고와 헌신, 노력에 경의를 보내며 감사함에 멀리서나마 한국에 있는 서쪽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본다. 물론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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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곤 미국 아주사퍼시픽대 공중보건학과교수


#질병관리본부#의료진#코로나19#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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