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이의 고통과 영광[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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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로코와 모노노케 히메

프란체스코 리발타 ‘성인 로코’ 1625년. 허벅지의 전염병 상처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프란체스코 리발타 ‘성인 로코’ 1625년. 허벅지의 전염병 상처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14세기 유럽, 역병이 돌자 사람들은 성모상을 앞에 두고 기도한다. 성모 마리아는 죽은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린 사람. 그 자신 고통 받은 사람이기에, 상처받은 이에게 위로를 준다. 각별한 기도의 대상이 된다. 지금도 유럽 중세 도시의 뒷골목을 걷다 보면 골목의 벽감(壁龕·벽의 움푹한 공간)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고통은 끝날 줄을 모르고, 사람들은 여전히 기도한다.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수호성인 로코는 순례자였다. 현재 이탈리아 라치오주에 있는 아콰펜덴테(Acquapendente)를 지나던 로코는 전염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발견하고 순례를 잠시 멈춘다. 병자들을 돕다가 전염병에 걸리고, 그 역시 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된다. 로코를 주제로 한 그림이나 조각들은 예외 없이 허벅지에 각인된 전염병 발진 상처를 묘사한다.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돌보았던 수호성인 역시 고통 받고 상처받은 사람이었음을 나타낸다. 로코의 전염병은 결국 나았으나 후유증으로 인해 외모가 크게 변하고 만다. 사람들은 그를 적국의 간첩으로 오인하여 감옥에 가둔다. 로코는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 감옥에 갇혀 죽는다. 죽고 나서야 그가 로코였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서로 그의 시신을 자기네 도시에서 모시려고 다툼을 시작한다.

중세에 전염병이 돌면 사람들은 태피스트리로 외부를 막고 성서를 읽는다. 21세기에 전염병이 돌면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집에서 넷플릭스를 본다. 최근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고전 애니메이션들이 일제히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생태주의적 사유를 담은 것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국내 제목 ‘원령공주’)’를 다시 본다. 영화는 재앙신이 아시타카의 마을로 돌진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누구나 역치 이상의 자극을 받으면 돌진하고, 고통이 마음의 잔을 넘치면 재앙신이 된다. 신은 도처에 있다. 아시타카는 재앙신에게 말한다. 분노를 거두라고, 정신을 차리라고. 그래야 모두가 산다고. 재앙신이 아, 그렇군. 내가 화를 내면 안 되지, 라며 멈추어 섰다면 시청자 비위를 맞추는 주말 드라마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재앙신은 멈추지 않고, 아시타카는 활을 쏘아 재앙신을 죽인다. 죽고 나서야 재앙신 속에 상처 입은 멧돼지가 들어 있었음이 드러난다.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 나온 재앙신.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 나온 재앙신.
나는 모노노케 히메를 상처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해왔다. 소년 아시타카가 재앙신에 의해 팔에 상처를 입은 이후 영화는 핵심으로 진입한다. 아시타카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며, 영화의 중반에 이르러 또 하나의 상처받은 영혼인 모노노케 히메를 만난다. 곡절 끝에 그 둘은 힘을 합쳐 숲의 신을 구해낸다. 그 일이 끝났을 때, 숲에는 새로운 싹이 돋고 아시타카의 팔에 있던 상처는 치유된다. 추억처럼 희미한 흉터만을 남기고. 그러니까 이것은 상처와 치유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재앙신의 이미지는 잊기 어렵다. 재앙신은 온몸에 검은 불길과도 같은 꿈틀거림을 가지고 돌진하며 그 주변의 것들은 모두 저주받는다. 재앙신은 악마와는 다르다. 어떠한 순정한 생물이, 그것도 멧돼지같이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어떠한 순정한 생물이, 고통을 이기지 못했을 때, 고통스러운 나머지 정신을 놓아 버렸을 때, 그것은 마침내 재앙신이 된다. 그것이 돌진하는 이유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이 파괴하며 저주를 쏟아내는 이유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이 비극을 끝내는 것이 바로 재앙신으로부터 상처 입은 아시타카,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아 인간을 저주하게 된 모노노케 히메라는 점은, 어떤 상처 입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지도 모른다. 그것은 상처받은 인간만이, 자신을 넘어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유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로코#모노노케 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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