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나꼼수 법무부’ 우리들병원 수사 막을 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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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급격히 ‘나꼼수화(化)’하고 있다. 독재 시절 뺨치는 언론통제 규정을 감히 법무부 훈령으로 내놓더니, 1일 ‘버닝썬’ 수사팀 파견검사에게 복귀 명령을 내렸다. 사건의 핵심인물인 윤규근 총경 수사를 여기까지만 하라는 메시지다.

● ‘경찰총장’은 보통 경찰이 아니었다

‘승리 단톡방’에서 경찰총장으로 언급된 윤 총경은 버닝썬만 개입한 경찰이 아니었다. 우리들병원의 의문스러운 1400억 원 대출과 사기 사건에 여권 인사들이 얽혀 있는데, 이 수사를 뭉개는데도 청와대 윤 총경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난달 국감에서 야당은 이 문제를 제기해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제가 잘 살펴보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그런데 법무부가 살펴볼 것 없다며 급히 수사 검사를 불러들인 형국이다.

정부 과천 법무부 청사. 동아일보DB
정부 과천 법무부 청사. 동아일보DB


물론 법무부는 “검찰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검찰개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 눈엔 정권 차원의 게이트가 드러날까 봐 서둘러 꼼수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윤 총경처럼 입 안의 혀 같은 경찰한테 수사종결권을 주어 검찰이 관여 못 하게 하는 것이 검경수사권 조정이고, 검찰개혁인 셈이다.

● 정유라 사건 초기처럼 묻힐 수도

우리들병원 사건은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남우)에서 실체가 없다며 종결한 사건이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10월 7일 국감에서 “혹시 우리들병원에 관련된 산업은행의 1400억 원 특혜 대출 의혹 들어보셨느냐”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2014년 4월 8일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안민석 의원이 정유라의 ‘승마 공주’ 특혜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때 그 폭발성을 모른 채 넘어갔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이상호 우리들병원 회장. 동아일보DB
이상호 우리들병원 회장. 동아일보DB
우리들병원은 이 병원 이상호 회장과 전처 김수경 씨가 친노로 유명하다. 이들이 A 씨와 동업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상호에게 신한은행 대출 260억여 원을 포함해 1000억 원이 넘는 빚이 쌓였다. 이를 갚겠다며 이상호가 2012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1400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신한은행이 동업자 A 씨의 서명을 위조했고, 이를 알게 된 A 씨는 신한은행 관련자들을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소했다.

●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나섰다고?

조선일보 6월 11일 인터넷판에 따르면, A 씨는 자신과 알고 지내던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경기고양을)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노무현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맡았던 신현수 변호사 등이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과 신한은행 양측 간 중재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A 씨를 VIP로 담당한 신한은행 측이 신뢰를 바탕으로 서류 작업을 했을 뿐, 범죄의 고의를 가지고 문서를 위조했다고 볼 정황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여권 인사 연루설도 실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는 거다.

검찰은 왜 그런 결론을 내렸을까. 채이배 의원이 들이댄 자료를 보면 정황과 증거는 차고 넘친다. 검찰 이전에 경찰 수사도 중단된 적이 있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3월 13일 “이 사건이 중간에 수사가 중단된 것은 정권 실세들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고 폭로했다.

● 언론은 이미 의혹을 보도했다

퍼즐을 찾아 올라가면 주간조선 2월 17일자 단독보도가 나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실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당시 사건을 보고받았던 민정비서관실의 직원은 경찰 소속이었는데 지난해 8월 인사에서 경찰청 핵심 보직으로 영전했다. 그는 산업은행 대출건 및 A 씨 관련 사건을 계속해서 체크해 왔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그 경찰 소속의 민정비서관실 직원이 바로 윤 총경이었다. 우리들병원은 대통령의 사위와 관련된 사건에도 얽혀 있지만 정말이지, 거기까지 의심하고 싶진 않다.

● 검찰이 어디까지 파헤칠지 두려운가

승리네 나이트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사건이 불거졌을 때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의 명운을 걸고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해 범죄 조장 반사회적 풍토를 뿌리뽑겠다”고 했다. 그러나 단속 정보를 알려준 정도만 밝혀냈을 뿐 연예인들로부터 뇌물 받은 건 건드리지도 않았다.

경찰 역량이 그 수준인 것도 당연하다. 윤 총경은 노무현 정부 때도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한 데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사이여서 경찰 내부에선 ‘정부 실세’로 유명하다. ‘경찰총장’인 그를 어찌 감히 경찰청장이 건드리겠나. 윤 총경의 뇌물 건도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았기에 찾아낸 것이었다.

윤규근 총경이 버닝썬 비리 의혹 관련 구속 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DB
윤규근 총경이 버닝썬 비리 의혹 관련 구속 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DB


경찰이 거의 고의적 부실 수사를 한 데는 청와대 민정라인이 개입했을 공산이 크다. 바짝 독이 오른 검찰이 여기까지 파헤칠까 봐, 아니 어디까지 밝혀낼지 알 수 없어 청와대는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법무부가 꼼수를 부렸다. 파견검사 복귀하라. 오버.

● 검찰의 힘을 빼서 경찰에 실어준다니

윤 총경 사건을 보면, 정부 주장대로 검찰의 힘을 빼자고 경찰 권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여권이 밀어붙이는 대로 경찰에 수사개시권과 종결권을 주면 윤 총경 사건은 그냥 묻히는 거다(물론 검찰도 우리들병원 사건을 그냥 묻어버렸다. 흑흑).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경찰권력의 비대화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고 검찰이고, 이들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할 수 있는 힘은 청와대에서 나온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힘을 빵빵하게 실어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라는 자존심이 있다지만 경찰의 중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의 명운을 걸었다면 진작 명이 끊어졌어야 마땅한 현 경찰청장이 ‘사냥처럼 시작된 조국 수사’로 시작되는 민주연구원 보고서를 전 경찰간부들에게 읽힌 게 그 증거다.

● 제발 검찰‘개혁’이라고 부르지 마시라

정치권에서 어떤 야합을 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검찰‘개혁’이라는 말은 빼기 바란다. 공수처 설치는 괴물 신설이고, 검경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괴물화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불길한 예언 같아 기록하고 싶진 않지만, 기요틴에 의지한 자는 기요틴에 목이 잘렸다는 역사가 있다. 공수처는 그렇게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