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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먹인 토끼풀 씨앗[포도나무 아래서]〈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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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먹인 토끼풀 씨앗[포도나무 아래서]〈37〉

신이현 작가입력 2019-10-01 03:00수정 2019-10-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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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태풍이 가고 나니 마당에 맑고 따스한 햇빛이 가득하다. 각시나방 애벌레는 거친 포도 잎을 밤새 갉아먹고 고인 물속에서 나온 개구리도 무엇을 잡아먹을까 긴 혓바닥을 날름댄다. 봄에 피었던 개망초 흰 꽃들이 한 번 더 피고 비바람을 이겨낸 열매들은 익어간다. 수확의 달이기도 하지만 땅이 열리는 달 10월이다! 무엇보다 10월은 나무를 심는 때이기도 하다.

이번 달에 우리는 지난겨울부터 준비한 삽목한 포도나무를 심으려고 한다. 10월에 어린 나무를 심으면 지금부터 땅속에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아 봄부터 씩씩한 기세로 자랄 수 있다. 농부에게는 봄만큼이나 중요한 때이다. 과실나무를 심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땅 만들기이다. 보리나 호밀 씨를 뿌려 겨우내 자라게 한 뒤 다음 해 봄에 베어 눕히면 땅도 살아나고 좋은 퇴비가 되어준다. 보리와 호밀 씨, 그리고 토끼풀 씨앗도 빠지지 않는다. “이 토끼풀 씨앗은 좀 이상한 것 같아. 아무래도 농약처리가 된 것 같아. 색이 자연스럽지가 않아. 이거 좀 확인해줄 수 있어? 농약 코팅 사항 표시가 없다니 이상하네. 판매자한테 전화해서 한번 물어봐줄래? 씨앗에 농약처리 했는지.”

구입한 토끼풀 씨앗 20kg이 왔는데 씨앗 색깔이 이상하다고 한다. 토끼풀 꽃으로 시계와 반지를 만들고 네잎클로버나 찾는 것이 전부였던 나는 아무리 봐도 뭔지 모르겠다. 토끼풀이 포도밭에 여러모로 쓰임새가 좋은 식물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레돔은 농사를 시작할 때 항상 토끼풀 씨부터 뿌린다. 토끼풀은 줄기가 땅으로 기면서 퍼져나가기 때문에 땅에 카펫을 덮은 것처럼 다른 잡초들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기 중의 질소를 빨아 당기는 성질이 있어 땅을 비옥하게 하고 포도나무에도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귀한 식물이다. 그러나 레돔이 토끼풀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꽃이다.


요란스럽지 않은 이 하얀 꽃은 사시사철 무리지어 풍성하게 피면서 꿀을 잔뜩 머금고 있다. 벌들이 언제 찾아가도 먹을 수 있는 마르지 않는 꿀을 한가득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꿀벌들이 신을 찾아가 간청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독이 있는 풀들이 너무 많아요. 제우스님, 좋은 꿀이 들어있는 꽃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벌들의 부탁을 받은 제우스가 제시한 꽃이 바로 이 토끼풀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 꿀벌들은 농부에게 와서 이렇게 간청한다. ‘꽃들이 예전 같지 않아요. 제발 독 없는 토끼풀 꿀을 먹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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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 토끼풀 씨앗은 농약으로 코팅된 것이었다. 이유는 보관에 용이하고 파종한 뒤에도 새들이 파먹지 않으니 수확률이 좋고, 싹이 나서 자랄 때도 이미 농약으로 도포가 되어서 병충해에도 강하다는 이유였다. 태어나기도 전에 농약에 뒤덮인 씨앗이라니, 레돔은 질색을 하면서 씨앗봉지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다.

농약으로 코팅된 씨앗을 뿌리면 어떻게 되는데? 깐깐한 남자와 일하려니까 나는 몹시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코팅된 씨앗을 뿌렸을 때 벌레와 새들이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예전 농약들은 그저 겉에만 묻어있었지만 요즘은 싹이 나면 식물의 줄기와 잎에도 그대로 스며들어갈 정도로 강해졌다고 한다. 꽃이나 열매에도 그 농약 성분이 그대로 들어있어 벌이 그 꽃을 먹으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머리 위 가을하늘이 맑아서 참 좋다고 자자하게 칭송하지. 그런데 좀 이상해. 하늘은 그토록 좋아하면서 왜 발밑의 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그는 건강한 꿀을 가득 머금은 싱싱한 토끼풀을 쓰다듬고 싶은 꿈이 어긋나자 기분이 좋지 않다. 콩을 뿌리면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고 한 알은 인간이 먹는다는 말은 옛날이야기다. 실제로는 콩을 뿌려 싹이 나기 무섭게 새들이 와서 다 파먹어버리기 때문에 농약 먹인 씨앗을 뿌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새도 건드리지 않고 땅속 벌레도 무서워서 도망가는 씨앗을 인간이 먹는다는 이야기다.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토끼풀#씨앗#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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