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대한민국 행복보고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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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얼마나 행복합니까?’ 서울대 행복연구센터는 카카오 플랫폼 ‘마음 날씨’를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인 104만 명에게 행복과 관련된 10개 문항을 물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안녕지수’(행복지수)를 산출했다. 결과는 10점 만점에 5.18점. ‘헬 조선’도 ‘해피 한국’도 아니었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의 편차가 컸다. 아프리카 수준(4점 이하)과 북유럽 수준(8점 이상)이 각각 응답자의 20%씩 차지했다. 행복도 양극화 현상을 보인 것이다.

▷가장 행복한 세대는 10대 남성이었다(6.2점). 가방이 반쯤 열린 채로 왼쪽으로 뛰었다, 오른쪽으로 뛰었다 등교하는 10대 아들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니 다행스럽다. 하지만 그 행복감이 좌절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다. 20대는 전 세대에 걸쳐 가장 행복감이 낮았다(5.06점). 누구나 다시 돌아가고 싶을 청춘인데, 취업 연애 결혼 어느 하나 쉽지 않은 ‘N포 세대’의 아픔이 느껴진다. 특히 20대 중에도 여성은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는 세대였다(4.98점). 기존 성 역할이 무너지고 있고, 사회 각계에서 여성이 약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여성이 고달픈 사회인 것 같다. 여성이 남성보다 안녕지수가 높은 연령대는 가사와 자녀 양육의 부담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60대뿐이다.

▷객관적인 지표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더 행복한 나라여야 마땅하다. 국민소득 교육여건 평균수명 등 객관적 삶의 질을 통계로 보여주는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한국은 2017년 22위다. 그런데 주관적 행복도인 지구촌행복지수(HPI)에서는 68위다. 인간개발지수 1위 국가인 노르웨이는 지구촌행복지수가 88위다.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같은 나라들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선진국일수록 주관적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모두가 가난한 것보다, 나만 가난한 상대적 박탈감의 영향 때문이다.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이 세계 30여 개국을 비교해 보니 국가 전체 부의 총량이 증가해도 함께 행복 수준이 높아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다음에는 행복은 사회적인 조건보다 개인적인 요인이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는 얘기다. ‘안녕지수’ 연구를 진행한 최인철 서울대 교수는 ‘행복의 비법’을 이렇게 요약한다. 삶의 재미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어야 한다, 서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맺고 식사나 대화 같은 경험을 나눠야 한다 등…. 벼락 행운이 찾아온 하루를 기다리기보다 ‘좋은’ 하루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행복 점수를 쌓는 길인 셈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국민 행복지수#안녕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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