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우선]날 수도, 노래할 수도 없는 종달새 마을의 슬픈 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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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옛날 어느 나라에 종달새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이들은 높이, 멀리 날며 노래하는 것을 멋지게 여겼다. 매일 학교에 모여 그 방법을 익히고, 성실히 연습했다. 종종 열리는 ‘멋진 종달새 뽑기’ 대회는 이들의 비행 의지를 높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몇몇 종달새가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비행기가 날고, 스피커가 노래하는 시대에 날갯짓과 노래 연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들은 “미래에 필요한 것은 비행기를 뛰어넘을 ‘창의성’”이라며 획일적인 교육과 평가를 없애라고 주장했다.

종달새들은 비행과 노래 연습 대신 뭘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성실한 연습이 바보 같은 일로 여겨지면서 이를 그만두는 새들이 늘었다. 종달새에 비유한 이 우화(寓話)가 상징하는 바를 눈치챘다면 한국의 교육 현실에 관심 있는 독자다.

지난 수년간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가들이 주도해온 교육정책의 키워드를 두 개 정도 꼽자면 ‘반(反)지식주의’와 ‘반(反)평가주의’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암기 위주의 지식교육은 시대착오적이며, 이를 평가하는 중간·기말고사나 학업성취도평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집단적 시험(일제고사)을 ‘적폐’라고 여겨왔다. 이런 생각은 2017년 학업성취도평가를 사실상 폐지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발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자문위는 “전국의 모든 중3과 고2가 ‘국영수’ 시험을 의무적으로 보는 건 새 정부가 지향하는, 경쟁을 넘어서는 협력교육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집단평가’에 대한 진보의 포비아는 입시에서 멀어 부담이 적은 학교, 즉 초등학교에서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정책화됐다. 현재 초등학교에는 중간, 기말 등 정기고사가 없다. 기초학력 미달학생 현황 등을 진단하기 위해 초6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학업성취도평가도 진보교육계의 요구에 따라 2013년 가장 먼저 폐지됐다. 담임교사 판단에 따라 반별로 보는 ‘단원평가’가 학생들의 교육 이해도를 평가할 유일한 진단장치인데, 시행 빈도와 문제 난이도가 교사와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결과를 낳았다.

초등학교는 한 인간이 일생에 걸쳐 배움을 계속해나갈 기초 토대를 만드는 곳인 만큼, 어찌 보면 초중고교 가운데 가장 명확하고 균질한 지식 중심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최근 교육계에서는 ‘교사 주도 교육’이 마치 ‘학생 중심 교육’의 반대말처럼 여겨지며 폄훼돼 왔다. 요즘 교사들은 배경지식이 백지에 가까운 ‘초딩’들을 모아놓고도 학생 주도 수업을 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렇다 보니 상당수 학생은 창의성의 재료로 쓸 기초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중학교에 진학한다. ‘상당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초등학생의 학력을 진단할 균일한 평가 자체를 없앴기 때문에 알 수조차 없게 됐다. 중학교 교사들이 저마다 토로하는 ‘난감한 상황’을 통해 그 심각성을 유추할 따름이다.

“한 교시 내내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식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수업이 다 끝나갈 때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물어요. ‘선생님, 근데 민주주의가 뭐예요?’라고요. 미치는 거죠.” 한 중학교 윤리교사의 말이다.

이번 주, 교육부는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동안 미뤄온 지난해 중고교생의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기초학력 보완대책을 함께 내놓겠다고 밝힌 걸 보면 기초학력 미달 수치가 꽤나 충격적인 수준임을 예상할 수 있다. 기초학력 미달을 줄이기 위해서는 초등 단계에서부터 균질한 평가도구로 학생들의 이해도를 진단하고 구멍을 메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진보 정부의 ‘철학’은 ‘집단적 평가’와 ‘학력 중심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종달새의 날개는 이렇게 꺾인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학업성취도평가#학력 중심 교육#집단평가#학생 중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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