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한국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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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달동네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한옥 집 단칸 셋방은 대가족이 살 부대끼며 추운 겨울을 나게 해준 힘이었다. 경제 발전과 함께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로 이제는 절반 이상 국민이 아파트에 산다. 그동안 한국인에게 집은 다양한 의미로 변주돼 왔다. 성공, 노후 대비의 상징에서 애증(愛憎)의 대상으로. 앞으로 집은 어떤 의미가 될까. 김정호 화백 2013년 작품 ‘서울의 달-행복으로’
비탈진 달동네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한옥 집 단칸 셋방은 대가족이 살 부대끼며 추운 겨울을 나게 해준 힘이었다. 경제 발전과 함께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로 이제는 절반 이상 국민이 아파트에 산다. 그동안 한국인에게 집은 다양한 의미로 변주돼 왔다. 성공, 노후 대비의 상징에서 애증(愛憎)의 대상으로. 앞으로 집은 어떤 의미가 될까. 김정호 화백 2013년 작품 ‘서울의 달-행복으로’
#1. 2007년 3월 10일 밤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오피스텔 본보기집 앞은 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두른 인파로 붐볐다. 코오롱건설이 짓는 123실 오피스텔 분양 현장접수에 참가하려고 대기자들이 이틀 전부터 줄지어 늘어선 것.

청약 당일인 12일에는 이동식 중개업소인 ‘떴다방’ 직원까지 몰려들어 1만여 명이 뒤엉켰다. 사고 예방을 위해 번호표가 발급됐지만 접수를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날 무렵 혼란이 시작됐다. 번호표를 못 받은 사람들이 대기자들 사이에 몰래 끼어든 것. 대기자들 간에 고성이 오가고 경호업체 직원들과는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밀려 넘어진 사람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이날 청약 접수는 취소됐다.

한 달 뒤 인터넷과 은행 접수가 병행된 청약은 경쟁률이 무려 4855 대 1이나 됐다. 3일간 몰린 청약금만 5조3000억 원이었다.

#2. 서울 강남구 도곡동 467에 66층까지 치솟은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 이곳은 한때 대한민국 ‘부(富)의 상징’이자 ‘부동산 불패 신화’의 대명사였다. 2003년 평균 매매가가 20억 원대였던 타워팰리스 244m²(전용)는 2008년 52억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출근길에 입주민들이 자동차로 건물을 빠져나오는 데만 1시간이 걸린다더라” “태풍이 세게 불면 건물이 흔들릴까 봐 창문을 못 연다더라”는 식의 웃지 못할 수군거림은 부러움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랬던 타워팰리스가 올 4월 발표된 국토교통부 주택공시가격에서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8월에는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 심형래 씨 부부 소유의 타워팰리스 244m² 아파트가 경매로 나왔다가 두 번 유찰되는 ‘굴욕’ 끝에 4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타워팰리스의 굴욕은 한국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의 굴욕이라며 세간에 화제가 됐다.

#3. 직장인 김모 씨(27·여)는 2주 전부터 낯선 사람 두 명과 한집에 산다.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있긴 하지만 통성명만 겨우 했을 뿐 나이도 직장도 고향도 모른다. 이들은 적은 돈으로 고단한 서울살이를 하기 위해 뭉친 세입자들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 씨는 5개월 동안 집을 알아봤다. 전용 30m² 오피스텔 전세금은 9000만 원, 25m² 원룸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엉뚱하게 전세금만 치솟아 직장 초년병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결국 김 씨가 정착한 곳은 서대문구 대현동 79m² 방 세 칸짜리 아파트. 보증금 없이 월세 90만 원인 이 집에 인터넷을 통해 모인 3명이 3분의 1씩 내고 들어왔다.

김 씨는 “먹고 자는 데 불편함이 없고 적은 돈으로 아파트에서 살 수 있어 대만족”이라고 했다.

앞의 세 가지 사례는 한국인에게 집이 가진 의미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때 한국인에게 내 집은 ‘성공’과 ‘노후 대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내 집을 마련해 집들이를 한다는 것은 집안의 ‘잔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의미가 달라졌다. 어느새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빚쟁이’와 동의어가 됐다. 최근엔 집을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한때 거주하는 곳’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졌다.

집은 사람의 몸만 아니라 마음을 누이는 곳이다. 집의 의미가 변하면서 집에 담긴 한국인의 마음도 변했을까. 한국인에게 집은 앞으로 또 어떤 의미가 될까.  
▼ “셋방 벗어나 내 집… 고시 합격한듯 축하전화 쇄도“ ▼
집값 오를 땐? 성공, 신분 상승의 상징, 웃돈 받고 파는 것


1982년 11월 4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우성1차 아파트 분양 현장 모습. 추첨이 끝나고 당첨자 명단이 나붙자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즉석 인화 카메라까지 동원해 당첨자를 파악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1만 원이던 시절 당첨자들은 무려 
1500만 원이 넘는 웃돈을 얹어 받으며 당첨 통장을 되팔았고, 이렇게 ‘강남 복부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DB
1982년 11월 4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우성1차 아파트 분양 현장 모습. 추첨이 끝나고 당첨자 명단이 나붙자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즉석 인화 카메라까지 동원해 당첨자를 파악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1만 원이던 시절 당첨자들은 무려 1500만 원이 넘는 웃돈을 얹어 받으며 당첨 통장을 되팔았고, 이렇게 ‘강남 복부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DB
한국인이 집에 대해 요즘처럼 무관심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내 집’에 대한 한국인의 애착은 유별났다. 부동산 투자로 수십 배의 수익을 남기는 ‘신화’가 사라진 이후에도 직장인이 되면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청약통장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김모 씨(58)는 1993년 난생처음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했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1980년 결혼한 김 씨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단독주택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보증금 100만 원에 매달 6만5000원을 내는 월세였다. 월세가 더 싼 곳은 부엌을 집주인과 같이 써야 했다. 김 씨는 작지만 독립된 부엌이 딸려 있는 그 집이 좋았다. 음식을 만들거나 목욕을 할 때 집주인의 눈치를 덜 봐도 됐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 직장에서 받았던 월급은 27만 원. 자녀 3명을 건사하려니 늘 쪼들렸다. 김 씨 가족은 면목동을 중심으로 서울 동부지역에서 10년 동안 월셋집과 전셋집을 전전했다.

변화의 계기가 마련된 건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친구의 권유로 청약통장에 월 10만 원씩 붓기 시작하면서 내 집 마련을 향한 김 씨의 꿈에 살이 조금씩 붙어 갔다. 대리로 승진한 김 씨의 월급이 오른 데다 아내가 식당일을 하면서 수입이 늘어 청약통장을 만들 여유가 생겼다. 1, 2년 뒤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아파트 청약 바람이 불었다. 김 씨는 일산에 있는 중형 아파트에 청약을 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김 씨는 1991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86m² 아파트를 분양가 8000만 원에 분양받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셋방에 살 때는 돼지우리 같았죠.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지냈으니….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눈치 보며 살았는데 방이 3개나 되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국가고시에 합격한 것처럼 친척들에게서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

2년 뒤 새 아파트에 입주한 김 씨는 경남 합천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집으로 모두 불러 모아 ‘집들이 잔치’를 벌였다. “셋방만 전전하던 제가 어엿한 아파트를 갖게 된 게 얼마나 좋으셨던지 부모님께서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연신 말씀하셨죠. 집안의 경사였어요.”
고달픈 셋방살이를 넘어…

아파트가 대중화되기 전인 1980년대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주택은 한옥이나 단독주택. 주인집 안방에서 거리가 가장 먼 대문 옆의 방 한두 칸은 대개 서민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렇다 보니 세입자들은 화장실과 수도 등을 다른 세입자와 공동으로 써야 해 불편이 컸다. 얇은 벽을 통해 ‘옆방 아저씨가 방귀 뀌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1980년대에 한옥에서 월세를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모 씨(55·서울 양천구 신정동)는 “바쁜 출근시간만 되면 화장실 앞에 줄을 서야 해서 고역이었다”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집주인한테 주눅이 들곤 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셋방살이는 필연적으로 사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지는 않을까 늘 마음을 졸여야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처음 시행된 1981년 이전에는 법에 정해진 최소 임대차 계약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6개월에 한 번씩 세를 올려줘야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직후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면서 전월세 가격도 덩달아 폭등했다. 1990년 4월 10일에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반지하 13m² 단칸방에서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9만 원을 내고 셋방살이를 하던 40대 가장과 부인, 7, 8세 자녀 등 일가족 4명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사 갈 방을 구하지 못해 생긴 비극이었다. 이 사건 이후 17명의 세입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도미노’가 일어날 정도로 세입자들의 고통이 컸다.

고도 성장기에 직장을 다닌 베이비붐 세대들이 내 집을 가지려고 애쓴 데는 사회보장이 미약했던 탓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1980, 90년대에는 사회복지제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베이비부머들은 집을 ‘최후의 안전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며 “집값 상승기가 지속되다 보니 ‘부동산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믿음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1989년에 있었던 분당신도시 아파트 청약이다.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호’ 건설 정책에 따라 조성된 수도권 1기 신도시 아파트 청약을 통해 많은 국민이 ‘신분 상승’을 꿈꿨다. 1989년 4월 18일 경기 성남시 공설운동장에 청약 신청자 2만5000여 명이 모였다. 공개 추첨을 통해 아파트 당첨자 585명을 뽑는 자리였다. 43 대 1의 행운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열기로 현장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투기를 단속하기 위해 국세청 조사요원들까지 투입됐지만 프리미엄 500만 원이 붙은 분양권이 즉석에서 거래될 정도로 투기가 극성이었다.

전국의 아파트 값은 주택가격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후 27년 동안 315% 상승했다. ‘강남 배밭이 개발돼 어느 날 갑자기 그랜저 타고 다니는’ 이웃의 성공 사례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강화했다. 외환위기 때 집값이 내리기도 했지만 이는 이후의 폭등세로 곧 회복됐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9월 이후 집값이 하락하면서 신화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세의 변신? 전세의 종말?

집값이 내리면서 가장 크게 배신감을 느낀 건 전세 세입자들이다. 집값 급등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던 이들은 집값 하락기에는 생활고에 내몰리고 있다. 집값 하락분을 만회하기 위해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급격하게 올리거나 월세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결혼한 회사원 신모 씨(38)는 처가와 직장이 가까운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전용면적 59m² 규모의 2억6000만 원짜리 아파트 전세를 구해 신혼집을 마련했다. 2년 뒤 전세 만기가 돌아오자 집주인은 전세금을 무려 1억 원이나 올려 달라고 했다. 막 첫째 딸이 태어나 이사할 형편이 되지 않았던 신 씨는 모아 둔 펀드를 모두 깨고 부모님께 손을 벌려 전세금을 올려 줬다.

다시 전세 만기가 된 올봄 신 씨가 사는 곳 주변 전세금은 2년 전보다 5000만∼1억 원가량 치솟아 있었다. 둘째 아이까지 태어난 신 씨 부부는 집을 옮기기보다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려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집주인은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200만 원을 달라고 했고, 이를 맞출 수 없으면 집을 빼 달라고 통보했다. 맞벌이 부부 월급의 30%를 월세로 낼 수 없었던 신 씨는 중개업소에 ‘나오는 대로 무조건 계약’을 걸어 놓고 어렵게 전셋집을 구해 이사했다.

신 씨가 나간 집은 5개월이 지나서야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 월세 매물이 급증하면서 월세 세입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퇴직을 앞둔 집주인 최모 씨(56)는 “노후 대비를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렸다”며 “3억6000만 원이나 되는 보증금을 한꺼번에 돌려주려다 보니 나도 대출을 받아야 해 월세 이율을 연 8%로 세게 내놨다”고 말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빠르게 늘면서 전세 제도가 이제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집주인이 전세를 놓은 것은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대출을 많이 끼고 집을 장만한 집주인도 대출이자에 각종 세금을 내고 주택 감가상각 비용까지 빼더라도 전세를 놓는 기간에 집값만 올라주면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세의 이런 ‘매력’이 사라졌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는 2011년 5월부터 올 9월까지 2년 5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전세금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은행금리도 연 3∼4%에 불과하다.  
▼ “전세 1억 올린지 2년만에 月200만원 월세전환 요구” ▼
거품 빠질 땐? 빚, 애물단지의 동의어

자산 가격과 금리가 동시에 떨어지면서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거래된 전월세 주택 83만7000여 건 가운데 월세 주택은 32만6000건으로 38.9%를 차지했다. 정부가 월세 거래를 조사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월세 확대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만큼 빠르게 확산되는 월세가 시장에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과도기에 세입자들이 임대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오피스빌딩 시장이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월세로 바뀐 것처럼 주택 시장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월세 전환기에 이를 감당하기 힘든 저소득층에게는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중산층 이상에 대해서는 주택 매매에 따른 혜택을 늘리는 계층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집값, 대세하락? 반등 후 상승?

집값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주택 시장에서는 이제 투기 수요가 거의 사라졌다. ‘강남불패’ ‘버블세븐(서울 강남·서초·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용인시 등 7개 집값 급등 지역을 이르는 말)’처럼 수많은 유행어를 낳았던 부동산 시장의 영광은 없어졌다.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집의 의미도 변화하고 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집을 사고팔아 자산 이득을 얻던 시대에서 실제로 살면서 향유 이득을 누리는 시대로 이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집 사기를 보류하고 있다. 전국 주택 매매 거래는 지난해 약 100만 건으로 2006년(150만 건)보다 33% 줄었다. 주택시장 침체는 내수소비 침체로 직결되면서 국가적 비상 사태가 됐다. 새 정부는 올 들어 3차례에 걸쳐 세금을 깎아 주고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주택거래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다. 최근 집값이 조금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는 게 희망의 신호일까.

집을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집값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를 이미 넘어선 데다 인구증가율 둔화와 저성장 등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앞으로 집값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불안한 데다 국내의 가계대출이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반론을 펴는 부동산 전문가도 많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단순히 주택보급률과 인구구조만 가지고 집값을 전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집값은 거시경제 상황이나 연령대별로 새롭게 나타나는 주거수요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은 1968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지만 그 이후 20년이나 집값이 오르다 1980년대 말에 거품이 터졌다.

인구구조만 하더라도 2030년까지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30년까지 늘어나 5216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2031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택 수요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가구 수는 1, 2인 가구 증가 등의 영향으로 2005∼2010년 전국적으로 145만 가구가 늘어났다. 최근엔 가족이 아닌 사람끼리 함께 사는 가구도 가구 수에 포함시키는 추세라 가구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부동산전문위원은 “장기적으로 집값이 하향 안정세로 갈 것이란 말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말과 같이 지극히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전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부산에서 최근 몇 년간 집값이 많이 오른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중기적으로 볼 때 집값 상승 여부는 지역, 시대, 상황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투기의 대상이 아닌 ‘홈, 스위트 홈’으로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 최고 66층 높이로 치솟은 ‘그들만의 성(城)’이었던 이 건물 속 아파트 한 채는 한때 5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 최고 66층 높이로 치솟은 ‘그들만의 성(城)’이었던 이 건물 속 아파트 한 채는 한때 5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최근 집값이 일부 지역에서 다시 오를 조짐이 보이면서 “드디어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일부에서 나온다. 많은 전문가들은 “원래 투자 전망이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함부로 오른다, 내린다 단언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주택자 가운데 머지않은 장래에 집을 살 계획이 있다면 올해 안에 사라는 조언은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연말까지 부부의 연간 소득을 합쳐 7000만 원 이하인 사람이 전용면적 85m² 이하, 6억 원 이하 집을 생애 처음으로 사면 취득세가 면제된다. 또 올해 말까지 6억 원 이하 또는 전용 85m² 이하 주택을 사면 앞으로 5년간 양도소득세가 면제되는 혜택도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저금리 대출 기회도 넓어졌다.

하지만 주택 시장이 회복된다고 해도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때문에 경제적 능력을 초과한 대출금으로 집을 사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는 원론적 경고도 나온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폭등기 때는 투기 수요가 집값에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집의 가치가 올라서 가격이 오르는 방향으로 주택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변화된 시장의 흐름에 맞춰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훈·정임수 기자 jefflee@donga.com  
▼ “모르는 사람끼리면 어때” 셋집 나눠쓰는 하메족 늘어 ▼
2030세대에겐?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한때 거주하는 곳


서울 시내 한 대학의 시간강사인 이모 씨(36·여)는 ‘하메족(族)’이다. 2030세대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 ‘족속’은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과 월세를 나눠 내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하우스메이트(housemate)’를 줄여 부르는 말.

이 씨가 하메족이 된 건 지난해 1월이다. 그는 2011년 9월부터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방 세 칸짜리 109m² 아파트에 보증금 4000만 원, 월세 145만 원을 내고 혼자 살았다. 강사 수입으로 매달 145만 원은 큰 부담이었고 전세를 구할 목돈도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하우스메이트였다. 유럽 유학 시절 하우스메이트 경험도 있었고,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에도 하우스메이트 문화가 서서히 생기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부동산 직거래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방은 각자 쓰고 거실과 주방을 함께 사용한다는 조건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와 남대문에 직장이 있는 회사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 어학연수 때 하메족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20, 30대라 반가웠다.

이렇게 ‘살림’을 합친 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시간에 화장실을 ‘선점’당했을 때나 집 안에서 ‘헐벗고 지낼’ 자유를 잃어버린 점은 아쉽지만 이 씨는 목돈 들이지 않고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게 만족스럽다. “모르는 사람이면 어때요? 서로 간섭하지 않아서 좋고, 싼값에 좋은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어서 좋은데요.”

집을 ‘소유’보다는 ‘거주’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젊은층이 늘면서 하메족은 확산되고 있다. 회원 170만 명인 부동산 직거래 인터넷 카페에는 이 씨처럼 ‘하메를 찾는다’는 글을 올리는 사람이 하루에도 80명이 넘는다.

“부모 세대는 집값이 꾸준히 오르던 시절 집을 투자수단, 노후보장 같은 경제적 목적으로 인식했지만 젊은 세대는 집을 사기도 어렵고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도 힘들어 집을 재산이 아닌 거주, 이용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하메족의 출현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실제로 조금만 무리하면 집을 살 형편이 되는데도 굳이 ‘남의 집 살이’를 고집하는 젊은층이 많다.

7년 전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서모 씨(35) 부부는 지난달 같은 동네 옆단지로 이사했다. 결혼 후 벌써 3번째 이사다. 이번에도 대출을 받아 전세금 6000만 원을 올려줬다. 다른 동네로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목동 학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기업 대리인 서 씨와 공기업 직원인 아내의 연봉을 합하면 8000만 원이 넘는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두 자녀 교육비로 매달 220만 원을 쓸 정도로 여유가 있다. 전세대출금 이자로 나가는 40만 원을 내고도 목동에서 ‘어느 정도 맞춰 가며’ 산다.

2년마다 대출받아 전세금을 올려주는 일이 반복되지만 서 씨는 집을 살 생각이 없다. 평생 모은 돈을 다 보태고 대출까지 받아 집을 샀지만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을 당한 뒤 ‘집만 가진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를 봤기 때문이다.

“옷을 사도 ‘떨이 상품’을 고르고, 외식도 변변히 못하고. 평생 일만 하며 산 집이 나중에는 배신을 때리더라고요. 아버지처럼 살기는 싫어요. 그 돈으로 가족과 여행을 다니며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집을 팔아도 빚을 못 갚는 내집빈곤층(하우스푸어)이 10만 명이나 되는 시대. 아버지들의 ‘실패’는 젊은층에겐 반면교사였다.

중장년층 세대가 인간 생존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주’를 통해 정체성을 마련했다면 젊은 세대는 의와 식을 통해 누리는 삶으로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장년층 세대는 집을 통해 노후를 준비하고 자신의 정체성도 마련했지만 젊은 세대는 구조적으로 주택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지면서 이런 정체성을 버렸다”며 “여행과 외식문화, 소비문화가 발달하면서 당장 구하기 힘든 집 대신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급음식, 좋은 옷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씨의 사례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6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내 집을 꼭 소유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2030세대의 약 60%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40, 50대는 55%가, 60대는 60% 이상이 “내 집이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세금이 무섭게 오르면서 ‘내 집’이 아니라 ‘내 전셋집’ 마련으로 꿈의 방향을 튼 이도 많다.

3년 전 지방의 보건전문대를 졸업한 뒤 치과 기공사로 취직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주모 씨(27)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인 15m²짜리 옥탑방이었다. 고향 강원도에서 버스운전사로 일하는 아버지께 손을 벌릴 수 없어 난곡동에서도 가장 싼 방을 고른 거였다.

겨울엔 칼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직장인 관악구 신림동 병원도 가깝고 옥상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어 나름대로 옥탑방의 ‘낭만’을 즐겼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결혼을 앞두면서부터 낭만은 사라졌다. 신혼을 시작하기엔 옥탑방이 너무 작았다. 여자친구에게 미안했다. 그때까지 주 씨가 모은 돈은 1000만 원. 임상병리사로 일하는 여자친구가 모아둔 돈은 3000만 원이었다.

예비부부는 두 달간 신혼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방 두 칸짜리 아파트 전세금은 1억5000만 원, 다세대주택은 9000만 원.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모은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은 없었다. 결국 이들은 옥탑방을 내려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인 21m²짜리 원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집으로 이사한 첫날 주 씨는 미안함에 절로 눈물이 났지만 아내는 “조금씩 집을 넓혀가는 게 더 재밌을 거야”라며 그를 위로했다.

맞벌이 부부인 이들은 지금 한 달에 400만 원가량을 번다. 이 중 250만 원은 꼬박꼬박 적금을 붓는다. 내년 4월 적금 5000만 원이 모이면 대출을 받아 전셋집으로 옮기는 게 꿈이다. 돈을 더 모으면 내 집을 장만해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치솟는 전세금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집값은 더 높은 장벽이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5억3351만 원. 월평균 소득 474만 원인 가구가 한 푼도 안 쓰고 꼬박꼬박 저축한다고 해도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는 데 9년 5개월이 걸린단다. 주 씨는 월세살이가 더 길어질 것만 같아 불안하다.

2030세대의 이 같은 변화는 장기적으로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집을 사주는 수요자 역할을 못하게 되면서 주택 매매시장은 수급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됐다. 세대 간 자산 이동이 단절되고 주거 불안정에 따른 출산율 저하가 염려된다는 분석도 있다. 자가 주택이 없는 이들이 안정적 수입이 사라진 은퇴 이후 노후 거주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면 더 큰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2030세대에게 금리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주택 구매를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특정 세대를 위한 차별적 정책으로 볼 게 아니라 거시적으로 국가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주장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천태만상을 다룬 김윤영의 소설 ‘내 집 마련의 여왕’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의 집을 둘러싼 한숨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연봉 3000만 원이 넘는 20대 직장인 서 대리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커피도 안 마시고 버스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4000만 원을 모은다. 여기에 대출 2000만 원을 보태 집을 구하려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이 있을 리가 없다. 서 대리의 부탁을 받고 함께 집을 찾던 여주인공은 이렇게 되뇐다.

“아니 내가 무슨 마술사인가… 떡 몇 개로 기적을 만들라는 얘긴가.”

김준일·정임수 기자 jikim@donga.com
#전세#셋방#하메족#월세#내집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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