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서명때 쓸만한 국산펜” 1만원대 모나미 153펜 나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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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기 용인시 모나미 본사 개발실에서 송하경 사장이 ‘모나미 153펜 플래티넘’(가칭)의 샘플 3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티타늄과 크롬 등을 도금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개당 1만 원대에 판매될 예정이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2일 경기 용인시 모나미 본사 개발실에서 송하경 사장이 ‘모나미 153펜 플래티넘’(가칭)의 샘플 3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티타늄과 크롬 등을 도금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개당 1만 원대에 판매될 예정이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치권 인사들이 간혹 ‘대통령이 서명할 때 쓸 만한 고급 펜이 있느냐’고 물어올 때가 있어요.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자리에 쓰일 좋은 국산 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늘 하고 있었죠.”

12일 경기 용인시 모나미 사옥에서 만난 송하경 사장(54)은 갈색 나무상자에서 볼펜 3개를 꺼내 보였다. 육각형 몸체, 원뿔 모양의 심 덮개, 검은색 조작 노크…. 모양은 영락없는 한국 최초의 볼펜 ‘모나미 153펜’이다.

하지만 소재와 무게, 심이 달랐다. 황동에 크롬과 티타늄으로 도금한 몸체는 정교하게 육각 형태로 깎여 있었다. 몸체의 색깔은 흰색이 아니라 은색이다. 검은색 심 덮개와 조작 노크는 매끈한 금속으로 만들었다. 내부에는 ‘파카’나 ‘크로스’ 등 고급 펜에 쓰이는 심이 들어 있다.

이들은 올해 153펜 50주년을 맞아 10월경 시장에 선보일 ‘모나미 153펜 플래티넘’(가칭)의 샘플이다. 가격은 1만 원대로 기존 153펜 가격(정가 300원)의 30배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모나미가 팔아 온 펜 중에 가장 비싼 ‘작품’이 되는 것이다.

송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서류에 사인할 때 모나미의 또 다른 장수 제품인 ‘플러스 펜’을 쓰곤 했지만 요즘은 기업인들조차 외국 펜을 선호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153펜에 50년 추억과 스토리를 담아 고급 필기구 시장에 뛰어들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송 사장도 153펜에 대한 추억이 많다. 아버지 송삼석 회장은 그가 4세 때 153펜을 개발했다. ‘153’엔 첫 판매 당시 가격인 15원과 모나미의 세 번째 제품이라는 뜻이 담겼다. 또 베드로가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는 성경 내용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가 ‘짝퉁’ 볼펜 생산업자들을 잡았다가 그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없던 일로 한 일, 브랜드의 유명세를 도용한 ‘모나미 화장품’의 부작용을 겪은 소비자들이 애꿎은 모나미 본사에 항의하던 일들이 아직 생생하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필기구의 수요가 줄고 있지만 ‘몽블랑’ ‘파카’ 등 고급 펜 시장은 커지고 있다. 송 사장은 “펜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도구가 되고 있고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가 명품 대접을 받는 시대”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크로스’의 볼펜 22개를 사용해 건강보험 개혁법안에 사인한 뒤 볼펜을 법안 통과의 주역들에게 나눠줘 화제가 됐고 크로스는 ‘대통령의 펜’으로 주목받았다.

모나미는 고급 펜 시장을 겨냥해 미국 디자인회사 아이데오(IDEO)와 함께 여러 가지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153펜에는 대한민국의 50년 경제성장 스토리가 담겨 있는 만큼 이를 살린 기념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안에 산업화 시대를 이끈 인물 153명을 선정해 시상하고, 새로 제작한 고급 153펜을 선물할 계획이다.

모나미 디자인실은 ‘명품 153펜’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디자이너인 양현우 과장은 “금속 소재를 다루는 법을 배우려고 밥솥 회사까지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은 공장에서 찍어내면 되지만 금속은 몸체의 육각 면을 일일이 깎아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인 마현석 과장은 “디자인을 변형하려고 2년 동안 수없이 많은 시안을 만들고 공모전도 열어봤지만 육각 몸체와 원뿔 모양 앞부분 등 기본 디자인이 바뀌면 153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며 “기본적인 디자인은 지키되 소재와 품질을 달리해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해외 디자이너들은 153펜을 기능에 충실하고 부품을 최소화해 만든 친환경 제품으로 평가한다.

양 과장은 “153펜이 1만 원을 넘는다고 하면 놀랄 수 있겠지만 시장에서 4만∼5만 원대에 팔리는 제품과 원가가 비슷하다”며 “기존의 153펜은 사람들이 잃어버려도 아까워하지 않는 게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귀한 대접을 받는 펜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인=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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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국산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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