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괴물’에 담긴 페미니즘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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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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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1818년에 출간된 ‘프랑켄슈타인’은 저자 메리 셸리가 19세에 쓴 첫 작품이다. 그는 부모가 다 선구적인 급진주의 사상가였는데, 출생 직후 모친이 사망하고, 16세 때 아버지의 사상적 추종자였던 퍼시 셸리를 만난다.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시인 중 한 사람인 퍼시 셸리는 그때 불과 22세였으나 이미 스무 살 때 동정심에서 어느 가출 소녀와 결혼한 상태여서 메리는 퍼시와 이탈리아 피사로 도망가 동거한다.

피사에는 바이런을 비롯해 영국 낭만파 시인들과 낭만주의에 동조해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해서 자주 모였다. 어느 비 오는 여름밤, 이들 중 한 사람이 “공포소설을 하나씩 쓰는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했고 모두 동의했다. 여러 사람이 창작에 착수했지만 작품을 완성한 것은 그때까지 글을 써 본 일이 없고 쓸 생각도 없었던 19세의 메리 거드윈이었다(후에 메리는 퍼시 셸리의 첫 아내가 사망한 후 그와 정식으로 결혼해 메리 셸리가 됐다).

‘프랑켄슈타인’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공포소설의 전통을 잇지만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이기도 하다. 흔히들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젊은 과학자의 이름이고, 괴물은 이름조차 얻지 못했으니 그의 올바른 명칭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이다.

이 작품은 출판된 후 200년간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했고 영화로도 열 번 이상 만들어졌으나 진지한 문학작품의 반열에는 끼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해석되면서 최근에는 문학도들도 읽어야 하는 작품 중의 하나가 됐다.

젊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지극히 훌륭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과학에 심취하면서 생명을 창조하려는 야심을 품게 된다.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으니 인간을 죽음의 공포와 불행에서 구하겠다는 고귀한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신적인 권능을 갖고 싶은 야망과 공명심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극악한 죄다.

그는 무한히 아름다운 생명체를 창조하려 했지만 자신이 창조한 괴물이 너무 흉측해서 그만 도망치고 만다. 이는 영아 유기 같은 무책임한 행위일 뿐 아니라 위험한 불발탄을 방치하는 것 같은 범죄이기도 하다.

실제로 괴물은 분노와 좌절감 때문에 여러 생명을 죽이지만 빅터가 그를 버리고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선(善)의 도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 외모가 너무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를 쫓아 버리고 죽여 없애려 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가 드 레이시 가족에게 바친 눈물겨운 정성을 보면 뜨거운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인간이 지적인 오만에서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할 때 발생할 치명적인 위험을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돼 왔다. 19세기 초의 과학은 오늘날의 유전공학이나 생명공학의 수준은 물론 아니었지만 17세기에 세포가 발견되고 18세기에는 산소를 비롯한 원소들이 발견되면서 우주의 신비, 생명의 신비가 곧 풀릴 듯한 기대가 일었다.

괴물은 또한 저자 메리가 법적인 미혼 상태에서 자녀를 낳고 느꼈던, 마치 괴물을 만들어 낸 듯한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메리는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됐고, 내연의 남편인 퍼시 셸리는 메리를 아이와 집에 남겨 두고 다른 여인들에게 눈길을 줬다고 한다.

여성주의 비평가들은 또한 이 소설이, 여성의 고유 영역인 임신과 출산의 기능을 가로채려는 남성의 욕망 혹은 음모를 대변한다고 해석한다. 남성이 생명창조까지 장악한다면 남성의 여성 지배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해석은 이 괴물이 산업혁명으로 인해 탄생한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물질문명과 과학 발전이 유도한 산업혁명이 탄생시킨 노동자 계급은 어떠한 힘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하고 그 파괴력은 가늠할 수 없는, 마치 부모 없는 인조인간 같은 괴물로 감지(感知)된다는 견해다.

이 소설은 ‘액자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류의 재앙을 제거하기 위해서 북극까지 괴물을 추격한 빅터를 북극 정복을 목표로 항해하던 월턴 선장이 발견하고, 죽어 가는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기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전하는 형식이다. 액자소설은 소설의 내용이 비현실적일 때 목격자 또는 청취자가 전하는 형식을 통해서 내용의 신빙성을 증가시킨다. 또 소설의 내용에 대해 보통사람인 제삼자의 반응을 전함으로서 독자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를 시사할 수 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문학적 밀도는 조밀하지 못하지만 공상과학소설의 비옥한 전통을 열었고 현대 문명의 위험성, 그리고 생명을 조작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 프랑켄슈타인 줄거리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위스 제네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명석한 청년이다. 17세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화학의 매력에 빠져서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생명의 비밀을 발견하고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시체와 동물의 뼈, 근육, 장기 등을 모아서 인간의 형체를 만드는데 세밀한 부분을 다루기가 힘들자 다소 크게, 8피트(240cm) 정도로 형체를 제작한다. 2년여간 실험실에서 밤낮없이 작업한 결과 드디어 인간의 몸을 완성하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생명을 얻은 그의 피조물은 너무나 무시무시한 괴물이어서 빅터는 공포에 질려 도망쳐 버린다.

상심과 두려움, 죄의식 때문에 한동안 앓아누운 빅터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동생 윌리엄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설상가상으로 빅터에게 누이동생과도 같은 하녀 저스틴이 범인으로 지목돼 사형 선고를 받는다. 빅터는 살인자가 자신이 만든 괴물임을 알지만 괴물의 존재를 설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다.

빅터는 괴물을 만나게 되고 괴물은 그동안 자신이 생존해 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흉측한 외모 때문에 숨어 지내던 괴물은 드 레이시라는 몰락한 프랑스인 가족을 엿보며 사랑과 헌신, 용기 등 인간적 가치를 터득하고 언어를 익혔다. 우연히 얻은 책으로 독학해 교양도 쌓은 괴물은 드 레이시 가족에게 연민을 사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가 경악한 아들에게 두들겨 맞고 도망친다. 이후 드 레이시 가족은 그가 두려워 오두막을 비우고 떠나 버린다.

자신이 인간 세상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괴물은 자기에게 반려를 만들어 주면 함께 남아메리카의 황야에 가서 살겠다고 약속한다. 빅터는 연민 반, 두려움 반에 괴물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여자 괴물 제작에 착수한다. 그러나 괴물의 종족이 생겨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거의 완성했던 괴물의 짝을 파괴해 버린다. 분노한 괴물은 “너의 결혼식날 보자”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괴물은 빅터의 절친한 친구를 살해하고 그 죄를 뒤집어쓴 빅터는 살인혐의로 투옥된다. 가까스로 풀려난 빅터는 오랜 연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지만 신부는 첫날밤에 괴물에게 살해된다. 빅터는 괴물을 잡으려고 북극까지 쫓아간다. 동사(凍死) 직전에 구출된 그는 그를 구출한 한 선장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괴물을 죽여서 인류의 재앙을 막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숨을 거둔다. 빅터가 죽자 괴물이 나타나 자기 창조주의 죽음을 애도한다.

※다음 주에는 윌리엄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이 소개됩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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