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컴퓨터가 꺼지지 않는 ‘이야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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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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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명의 작가가 협동작업… 콘텐츠 창작공간 ‘박이정’

14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있는 콘텐츠 창작그룹 ‘박이정’의 작가들. 뒷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금영(청소년소설), 이재(게임스토리), 양수연(편집디렉터), 목정균(무협소설), 박경빈(만화), 방지연(만화 스토리) 작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4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있는 콘텐츠 창작그룹 ‘박이정’의 작가들. 뒷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금영(청소년소설), 이재(게임스토리), 양수연(편집디렉터), 목정균(무협소설), 박경빈(만화), 방지연(만화 스토리) 작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레미제라블’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꾸로 드라마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소설도 인기다. 지난해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월 초 출간 1주일 만에 2만 부나 팔려 나갔다. 21세기북스는 올해 드라마, 영화 콘텐츠를 소설로 만드는 전담팀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영화 개봉이나 드라마 종영에 맞춰 나오는 영상 소설의 작가는 누구일까. 원작 대본과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직접 소설화한 것일까? ‘피에타’ ‘반창꼬’ ‘돈 크라이 마미’ ‘써니’ ‘응답하라 1997’ ‘아이두 아이두’ 등 영화와 드라마 소설, 게임과 만화 스토리를 개발해 온 콘텐츠창작 그룹 ‘박이정’을 찾아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했다.

서울 구로구 온수동의 한 빌라에 자리 잡은 ‘박이정’의 사무실은 벌집을 연상케 했다. 109m²(약 33평)의 공간에 상주 작가 10명의 집필공간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이야기 공장’이었다.

이들이 영화,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작업을 하는 기간은 평균 6주, 길어야 두 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보통 서너 명이 한 팀이 돼 작업이 끝날 때까지 집에도 못 가고 밤샘작업에 매달린다. 특히 드라마는 ‘쪽대본’ 촬영 관행 탓에 작가도 ‘결말을 모른다’고 할 때가 있어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종영 전까지 책을 내야 하는 저희로서는 피가 마르죠. 작가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을 발휘해 보기도 하고, 인터넷 게시판 여론을 살펴보면서 소설로 창작해 냅니다. ‘연가시’의 경우 영화 속에서는 잘 이해가 안 됐던 생물학적 지식을 보충하는 등 캐릭터의 심리묘사, 시대고증, 배경지식 등을 보충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팀 작업이 필수입니다.”(양수연 작가·36)

새벽형, 달밤형 등 작가들의 집필 취향은 각각 다르지만, 작업용 컴퓨터는 꺼지는 법이 없다. 글을 쓰다 지친 사람들은 사무실 한쪽에 마련돼 있는 남녀별 2층 침대에서 쓰러져 잔다. 한여름엔 에어컨까지 돌려야 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나와 한전 직원이 찾아온 적도 있다고 한다.

‘박이정’의 목정균 대표(36)는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비뢰도’(현재까지 총 29권)를 쓴 인기 무협소설 작가. 다른 작가들도 방지연(SF 판타지), 이금영(청소년물 및 게임 스토리), 방진하(역사물) 작가 등 각자 전문 분야가 있다. ‘박이정’(넓고 정밀하다는 뜻)이란 이름은 한자성어 ‘박이부정(博而不精)’에서 나온 말이다.

“‘박이정’이 구로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부천(만화, 애니메이션 중심지)과 홍대(출판사가 많은 지역)의 중간에 있어서예요. 최근에 판교로 이사 간 구로디지털단지의 게임업체들도 주 고객이었고요.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작가는 24명이고, 게임 개발엔 수많은 인원이 참여합니다. 순수소설 창작은 혼자 하는 게 좋겠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원 소스 멀티 유스’ 콘텐츠 개발은 각 분야 전문가가 협동작업을 하는 게 ‘신속성’과 ‘퀄리티(질)’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협업을 하지만, 영화 ‘피에타’의 경우는 황라현 작가가 두 달간 홀로 작업했다. 황 작가는 “‘피에타’가 취향에 맞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며 “청계천 뒷골목과 황학동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주인공들의 심리를 상상하며 소설로 재창작한 일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바쁜 가운데서도 가끔씩 택시 한 대에 가득 타고 심야영화를 보러 가는 ‘풀 택시 파티’를 연다. 만화스토리 전문 방지연 작가(35)는 “서른이 넘은 작가는 ‘감(感)’이 떨어지면 끝”이라며 “매달 100여 권의 신간을 구입하고, 베스트셀러 책은 물론이고 TV드라마 영화도 빼놓지 않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정건희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박이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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