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화 보고 싶다” 北 리분희, 그리움의 눈물 흘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3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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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남북 탁구 단일팀, 북측의 이분희(사진 왼쪽)와 남측 현정화. [동아일보DB]
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남북 탁구 단일팀, 북측의 이분희(사진 왼쪽)와 남측 현정화. [동아일보DB]
"너무 너무 보고 싶습니다."

리분희(44) 조선장애자 체육협회 서기장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50일간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현정화(43) 대한 마사회 탁구단 감독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리 서기장이 12일 AP통신 평양지국 기자와 만나 현 감독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두 사람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 단일팀에서 호흡을 맞춰 기적 같은 금메달을 일궈냈다.

"50일간 하루 24시간 내내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함께 훈련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매 끼니를 같이 먹었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다. 분단된 남과 북. 불과 4년 전엔 115명이 희생된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도 있었다.

"리분희와 짝을 이뤄 복식경기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했었다."

당시 20세에 불과했던 현 감독은 AP와의 전화통화에서 처음엔 리 서기장을 무척 탐탁찮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리 서기장이 현 감독을 한 수 아래로 여긴 것도 요인 중 하나였다.

"그땐 너무 어려서 남북 단일팀이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현 감독의 회상이 어어졌다.

서먹서먹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리 서기장의 간염이 악화돼 하루 훈련을 거르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현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그때부터 라이벌 의식을 버리고 언니가 건강을 회복해 북한을 위해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팀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됐다.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애정을 나눴다. 밤이 되면 북한 측 감시의 눈길을 피해 허겁지겁 야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리 서기장은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 민족이다. 우리는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리분희-현정화 조가 활약한 남북 단일팀은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3-2로 꺾고 우승했다. 기적에 가까운 승리였다. 중국은 단체전 9연속 우승에 도전하던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격차를 줄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를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으로 여겨졌었다.

두 사람은 1993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재회했다. 하지만 남북이 따로 출전한 탓에 2년 전처럼 호흡을 맞출 기회는 없었다.

이후 19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을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이 서기장은 21년 전 현 감독이 선물한 금반지를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 감독은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장애인 선수들과 훈련 중이던 리 서기장을 만나기 위해 통일부에 북한 주민 접촉 신고를 했지만 승인을 얻지 못했다. 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코리아'의 개봉에 맞춰, 두 사람의 재회가 추진됐으나 성사 직전에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리 서기장은 8월 말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북한 장애인 선수 대표단을 이끌고 참가한다.

리 서기장의 자녀 가운데 한 명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고 한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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