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민구]한국이 노벨 과학상 받을 날도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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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지난해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노벨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 12월 10일 거행됐다. 축하 음악회와 수상자 발표회에 다양한 행사를 곁들여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 세 시간씩 소요되는 시상식과 만찬에는 스웨덴 국왕 내외가 참석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평상복이면 충분하지만 노벨상 관련 행사 참석자들은 반드시 연미복을 입어야 한다. 이런 격식이 시상식의 품격과 참가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은 발명가이자 기업인인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에 따라 1901년부터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을 시상했다. 1969년에는 경제학상이 추가됐다. 과학기술 분야의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은 공정한 전문적 심사를 통해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수상을 둘러싸고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벨상은 원칙적으로 세계 최초의 발견 또는 발명을 통해 인류복지에 기여한 과학기술자를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수상업적 및 파급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수학 및 공학이 포함되지 않는 바람에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자동차 비행기 원자력 등 인류복지에 크게 기여했던 분야가 제외됐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래도 노벨상은 과학기술의 수준과 국가 위상의 척도가 되고 있다.

탁월한 연구 성과 잇따라 고무적

지난 110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543명이 수상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미국에서 배출됐을 만큼 미국은 과학기술의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다음은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 러시아 일본 순이다. 일본 태생 노벨상 수상자는 15명, 중국계는 6명, 인도계는 3명이다. 한국은 최근 세계 10위권의 경제국가로 도약했고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됐다. 삼성 LG 현대차 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했다. 올림픽 금메달 집계에서 상위 랭킹을 차지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국력이 크게 증진되고 있는 데 비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아직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해 참으로 아쉽다.

미국과 유럽에 수상자가 많은 것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프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인재들을 흡수하고 치열한 경쟁 분위기를 조성해 창의적인 연구결과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수상자 대다수가 미국 또는 유럽에서 연구한 업적인 데 비해 일본의 경우 15명의 수상자 전원이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연구한 점이 다르다. 스포츠에서 한일전에 쏠리는 관심과 열기는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최근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가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는 언제쯤 노벨상을 탈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수상자를 배출하기 어려우리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과학기술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유신 이후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폈고, 일생현명(一生懸命)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과학자들은 목숨 걸고 한 우물을 열심히 판다. 이러한 노력이 노벨상으로 결실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년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탁월한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1970, 80년대에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연구 성과 발표에서 수상까지 10여 년의 기간이 소요됐으나 근래에는 연구결과의 철저한 검증 및 파급효과가 중시돼 20년 이상으로 연장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령도 고령화하고 있다.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령은 물리학상을 제외하고는 75∼85세였다. 이러한 추세를 고려할 때 2020년대에는 대한민국도 수상국 반열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과학정책, 정치적 고려 배제해야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는 급속도로 증가되고 있어 선진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미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개방, 경쟁, 융합, 창의성을 기본원칙으로 선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경쟁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연구지원 없이 노벨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학기술 투자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공정한 경쟁이 핵심인데 최근 연구개발 특구, 과학비즈니스벨트, 가속기 등 대규모 투자가 합리성보다는 정치적으로 고려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곧 출범할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과학기술 정책 및 투자의 컨트롤타워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정치성과 이벤트성 정책을 배제하고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직결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도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는 젊은 연구원들에게 꿈을 심어줘야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 우리 과학기술자들도 일생동안 한 우물을 파는 정신으로 연구에 몰두하면 노벨상의 길이 열릴 것이다.

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mk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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