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루저의 반란 ‘공부의 신’ vs ‘드래곤사쿠라’

  • Array
  • 입력 2010년 1월 7일 15시 00분


코멘트
"너희같이 멍청한 놈들은 똑똑한 놈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평생 속고 손해만 보다가 결국엔 패배한다. 규칙 속에 사는 사람보다는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뛰어들어라! 공부를 해라! 천하대에 가라!"

지난해 초 일본의 인기 만화·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내보내 성공한 KBS가 4일부터 새 월화드라마로 문제학교 꼴찌들을 일류대에 보내는 '드래곤 사쿠라'(ドラゴンざくら)를 리메이크한 드라마 '공부의 신'을 선보였다.

최근 8개월간 월화드라마 무대는 시청률 40%를 쓸어간 MBC '선덕여왕'의 독주체제였다. 그런 '선덕여왕'이 끝나고 4일 KBS '공부의 신', SBS '제중원', MBC '파스타' 등 방송 3사는 일제히 새 드라마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막상 시청률 뚜껑을 열어보니 선덕여왕의 치세를 이어받은 것은 바로 김춘추와 김유신이었다. '선덕여왕'에서 김춘추를 연기했던 유승호와 김유신의 아역 이현우가 출연한 KBS '공부의 신'이 월화드라마 최강자로 나선 것. '선덕여왕'의 시청률을 고루 나눠 가졌던 세 드라마가 2회 차에 접어들면서 '공부의 신', '제중원', '파스타' 순으로 순위의 가닥이 잡히고 있다.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일본 TBS 드라마 ‘드래곤 사쿠라’.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일본 TBS 드라마 ‘드래곤 사쿠라’.


아직 2회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공부의 신'은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를 차지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덩달아 원작인 일본 드라마 '드래곤 사쿠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같지만 다른 '공부의 신'과 '드래곤 사쿠라'를 전격 비교한다.

▶ 한일 고삼 꼴찌들 일류대 들어가기 프로젝트

일본 드라마 '드래곤 사쿠라'는 일명 '도쿄대학 합격의 참고서'라고 불리는 미타 노리후사의 만화(한국판 제목은 '입시 최강전설: 꼴찌, 동경대 가다')를 원작으로 한 11부작 미니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된 적이 있다.

2005년 일본 TBS 방송 당시 평균 16.4%(마지막 회는 20.3%)의 시청률을 올렸으며, 같은 해 도쿄대 수험생이 12%나 늘게 한 화제작이다. 아베 히로시, 하세가와 교코 등 톱스타는 물론 아이돌 야마시타 토모히사, 나가사와 마사미, 고이케 뎃페이 등 아이돌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TBS '드래곤 사쿠라'의 큰 줄거리는 '공부의 신'과 비슷하다. 24억 엔의 부채를 진 데다 대학 진학률이 2%도 안 되는 '삼류 꼴통' 류잔 고등학교를 도산 처리하러 온 폭주족 출신의 변호사 사쿠라기 겐지(아베 히로시)가 "이번 사건이 일본 내 '학교 도산 1호'가 될 것"이라는 선배의 말에, 학교를 재건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목표는 자신이 주축이 돼 학생 5명을 국립 명문 도쿄대에 합격시키는 것. 물론 이 학교는 개교 이래 단 한 명도 도쿄대 입학생을 배출한 적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반이 꾸려지고 아이들은 사쿠라기 변호사가 초빙해온 교사들로부터 도쿄대 특별 합격 비법을 전수받으며 희망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게 된다.

KBS '공부의 신'은 '서울대'라는 현실에 있는 학교 대신 '천하대'라는 가상의 일류 대학에 학생들을 보내는 설정이다. 여기에다 한국적인 현실을 가미했다.

병문 건설에서 세운 병문 고교는 창업주가 병으로 쓰러지고 모기업의 경영이 위태로워지면서 다른 재단에 학교 운영권을 넘기거나 법인 해산을 하고자 한다. 개교할 때부터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 문제아들만 다닌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 탓에 입학생이 줄고, 배정이 된 학생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기 일쑤.

설상가상으로 주변 일대가 재개발 예정지로 소문이 나면서 지역 주민들은 '상 똥통 학교' 병문고가 조속히 망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수막을 학교 정문 앞에 내걸 지경이다. 병문고만 사라지면 집값도 오르고 재개발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김수로, 배두나, 오윤아 등이 주요 성인 배역에 캐스팅 됐고, 유승호, 고아성, 이현우 등 아역 배우계의 톱스타들이 발탁돼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 '열혈남아' 강석호 대 '냉혈한' 사쿠라기 겐지

KBS ‘공부의 신’에서 카리스마 변호사로 변신한 김수로와 일본 TBS ‘드래곤 사쿠라’에서 같은 역을 연기한 아베 히로시.
KBS ‘공부의 신’에서 카리스마 변호사로 변신한 김수로와 일본 TBS ‘드래곤 사쿠라’에서 같은 역을 연기한 아베 히로시.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아우라를 뿜어내는 인물은 바로 일류대 특별반을 이끄는 '코치' 격인 변호사다.

우선 4일 첫 회 마지막에 학생들을 일류대 특별반에 끌어오기 위해 일장 연설을 하는 인상 깊은 연기로 벌써 '독설 수로'라는 별명이 붙은 '공부의 신'의 김수로를 짚어 보자.

로펌에서 나온 뒤 파리만 날리는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던 강석호는 수수료라도 건지기 위해 삼류 고교 병문고 청산 업무를 맡는다. 그는 당초 문제아들만 가득한 이 학교의 법인 청산만 해주고 빠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 학교 불량 청소년들을 보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최고 일류대인 국립 천하대에 5명을 합격시키겠다고 큰소리친다. 사실 그도 싸움꾼 문제아에다 병문고 출신이었던 것.

강석호 변호사는 원래 오지호가 맡기로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영화 '울학교 ET'에서 교사로 열연한 김수로에게 돌아갔다. SBS의 예능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김계모'라 불리며 코미디언보다 웃긴 연기를 펼쳤던 그의 가벼운 이미지 때문에 원작 팬들은 그가 이 역할에 어울릴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수로는 '공부의 신'을 통해 그동안의 이미지를 떨쳐 버리겠다는 듯, 사생결단 내듯 대사를 씹어 뱉었다. 강당에 수백 명의 문제아를 모아놓고 '멍청한 놈들' '평생 남들에게 발리고 살 놈들'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입 닥치고 내말이나 들어봐 이 자식들아! 인생을 살면서 발린다는 거. 패배가 뭔지 아냐? 속는다는 거다. 법률, 교육제도, 세금, 부동산 제도, 금융, 급여 시스템. 똑똑한 놈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자기들 살기 편한 대로 룰을 만든다. 어렵게 배배 꼬아서 똑똑하지 못한 자들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든다. 너희같은 놈들이 머리 좋은 놈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공부, 공부다! 뒤에서 불평만 늘어놓는 찌질이가 아니라 이 사회의 룰을 뜯어고치는 사람이 되란 말이다!"

한 드라마 전문 블로거는 이 장면에서 "그의 연설은 마치 전장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사령관을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또 다른 블로거는 "연기파 배우 김수로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부의 신' 강석호 변호사는 정의롭게 그려지지만, '드래곤 사쿠라'의 사쿠라기 변호사는 좀 더 냉혹하다. 학교를 재건하고자 하는 이유도 사심이 가득하다. 전 폭주족 리더였다는 사실이 주간지를 통해 폭로돼 일감이 끊기다시피 하자 이번 사건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자 도산보다는 '일류학교로의 재건'을 꿈꾼 것. 그가 내건 내용은 도쿄대 합격자 100명이며 그 첫 단계로 우선 5명을 진학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는 멋대로 류잔 고교의 교사까지 맡으며 무모한 계획을 시도한다.

사쿠라기 겐지는 국내에서도 '미중년'으로 통하는 아베 히로시가 맡았다. 지난해 KBS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지진희가 맡았던 역할을 했던 배우다. 차승원을 연상시키는 외모 탓에 적지 않은 그의 국내 팬들은 내심 사쿠라기 변호사 역할을 차승원이 맡아주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사쿠라기 변호사는 일반적인 학원물에 나오는 코믹하고 존경받는 스승과는 동떨어진 인물이다. 대신 그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냉정한 현실을 가감 없이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도쿄대에 들어간 것만으로 인생 성공한 줄 아는 놈들, 앞에 있는 상대방이 도쿄대 출신인 걸 알고 아부하는 놈들, 나도 다 싫어한다. 그러나 지금의 너희는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어른이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지.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 그런 건 없다. 근거 없는 망상으로 너희를 현혹하는 것이지. 결국 너희를 기다리는 건 불만과 후회뿐이다. 바보와 추녀일수록 도쿄대에 가라!"

'특별반 1호 학생' 야지마 유스케(야마시타 토모히사)를 꼬드길 때도 그는 잔인하다.

부친의 사채 300만 엔을 대신 갚아주겠다며 접근한 것. 돈에 팔려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는 유스케에게 그는 1만 엔 지폐를 흔들며 "결단이 늦은 녀석은 그만큼 기회를 잃어버리는 법이야. 5초마다 1만 엔씩 찢어버리마"라며 하나, 둘, 셋, 넷을 세고는 돈을 찢는다.

끝내 눈물을 떨구는 유스케에게 사쿠라기는 "1엔짜리도 안 되는 자존심으로 날마다 빚을 갚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해도 원금은 줄어들 낌새도 안 보이지. 비참한가? 이게 너와 평생 함께 할 현실이다. 이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지"라고 쐐기를 박는다.

▶ '황백현' 대 '유스케' 한일 미소년 대결

KBS ‘공부의 신’에서 반항아 황백현을 연기한 ‘국민 남동생’ 유승호. 원작인 일본 TBS ‘드래곤 사쿠라’에서는 ‘쟈니스’의 톱스타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야지마 유스케를 연기했다.
KBS ‘공부의 신’에서 반항아 황백현을 연기한 ‘국민 남동생’ 유승호. 원작인 일본 TBS ‘드래곤 사쿠라’에서는 ‘쟈니스’의 톱스타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야지마 유스케를 연기했다.


강석호 변호사에게 천하대 특별반 제의를 받는 '반항아' 황백현 역은 잘 자란 '국민 남동생' 유승호가 맡았다.

백현은 어려서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란 조손가정 아이다. 공부와는 담쌓은 채 미래에 대한 아무런 목표도 없이 거칠게만 살았다. '명문대 숭배자' 같은 강석호의 연설에 백현은 "까고 있네. 그런 당신은 천하대 나왔어? 천하대가 그렇게 좋아?"라며 반발한다.

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지만, 자존심 강한 백현은 강석호의 도움도 거절한 채 학교를 빠지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그러나 강석호는 손자 몰래 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함으로써 백현의 마음을 움직인다. 백현은 강석호의 오만을 꺾기 위해, 할머니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거친 반항아를 연기하기엔 유승호가 너무 귀엽다는 시청자 평이 다수지만, 전작 '선덕여왕'을 통해 "여우같이 연기한다"는 평가를 받은 아역스타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백현 외에도, 엄마가 술집을 하는 풀잎(고아성), 백현을 좋아하는 현정(걸 그룹 '티아라'의 멤버 지연),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에게 반감을 품은 '힙합 보이' 찬두(이현우), 고깃집 아들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봉구(이찬호)가 천하대에 가기 위한 특수훈련에 들어간다.

'쟈니스'의 톱스타 야마시타 토모히사, 일명 '야마삐'가 연기한 야지마 유스케는 클래스메이트인 히데키와 밴드 'SPIKee(스파이키)'를 결성해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있는 3학년생이다. 밴드 멤버답게 하고 다니는 귀걸이도 유승호보다 요란하다. 머리도 노랗게 염색한 장발로 아이돌다운 외모다.

사쿠라기 변호사와의 첫 만남은 사채업자들에게 두들겨 맞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을 구해준 사쿠라기에게 유스케는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 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어"라며 허세를 부린다. 사쿠라기에게서 돌아온 건 "패자는 누구나 그렇게 말해"라는 대답이지만.

유스케는 그에게서 아버지가 진 빚 300만 엔을 빌리는 대가로, 특별 반에 합류한다. 이런 그는 공부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부잣집 아들이자 유스케와 같은 밴드 출신인 히데키(코이케 텟페이)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미즈노(나가사와 마사미)는 술집을 하는 엄마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아서, 코사카(아라가키 유이)는 남자친구인 유스케를 따라, 공부 잘하는 쌍둥이 동생에게 차이던 이치로(나카오 아카요시)는 자신을 찾기 위해 특별반에 들어온다.

앞으로 '공부의 신'에서는 원작인 '드래곤 사쿠라'처럼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성적 올리는 비법'이 다수 소개될 예정이다. 원작에서는 '단어를 외울 때는 책상에서 외우지 마라', '잠자기 전에 단어를 암시하라', '6시간의 수면 시간을 유지하라' 등의 공부법이 소개됐다.

"주입식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다", "학교란 건 매표소와 같다", "아무리 바보 취급받고 무시당해도 결과가 좋으면 다 뒤집을 수 있어", "이대로 가단 평생 아르바이트나 하다 돈 좀 만지러 술집이나 나가겠지" 같이 다소 불편한 대사가 난무하지만, 일본에서는 많은 학생이 이 드라마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고 한다.

'학력 사회'라는 점에서 한국도 일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리메이크작 '공부의 신'도 국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