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좋은 연설, 나쁜 연설, 지루한 연설

  • 입력 2008년 8월 26일 20시 18분


연설은 왜 하는가. 저명한 정치가와 최고경영자(CEO)의 연설 원고를 써온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닉 모건 박사는 ‘연설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좀 과격한 표현 같지만 곱씹을수록 수긍되는 말이다. 연설은 상대가 한 사람이든, 수천 명이든, TV 카메라 앞에서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청중으로 하여금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강력한 설득 행위다.

聽衆과 교감했던 케네디

연설은 원래 정치가의 중요한 무기이지만 매스컴은 그것을 더욱 증폭시킨다. 연설 능력이 대통령 능력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안방에 전달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연설을 잘하는 대통령이 당연히 유리하다. 미국의 루스벨트, 레이건, 클린턴 대통령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도 연설을 잘했다. 그중에서도 TV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연설로 대중과 교감할 줄 알았던 탁월한 연설가였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하십시오.’ 취임사 말미의 이 말은 고교생이라면 영어시간에 한 번쯤 외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취임사보다 더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1963년 6월 26일에 행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이다. 그의 연설에 감동한 베를린 시민들이 사흘간 베를린을 휘젓고 다녀 군대가 출동해야 했을 정도였다. 케네디는 냉전시대 공산국가들에 둘러싸여 서방세계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던 베를린 시민들의 불안감을 꿰뚫었다. 직접 작성한 연설문에서 그는 베를린으로 상징되는 자유세계를 위해 미국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연설의 전제는 청중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잘 읽어내는 것임을 보여준 본보기다.

좋은 연설이란 우선 이처럼 내용이 좋아야 한다. 히틀러가 아무리 대중연설에 능하다 해도 그의 연설은 나쁜 연설일 뿐이다. 궤변과 선동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25 취임사, 7·11 국회개원 연설, 8·15 광복 63주년 및 건국 60주년 기념연설 등 세 번의 중요한 대국민 연설을 했다. 지난 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하기만 하면 ‘오늘은 또 무슨 폭탄발언을 하려나’ 하고 가슴을 졸였던 데 비하면 안정된 연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연설은 국민에게 감흥을 주기엔 미흡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이 8·15연설을 하는 동안 카메라에 비친 청중석에서는 많은 정부 인사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눈을 감거나 지루해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대통령 측근들도 저런 표정인데 TV로 지켜보는 국민이 어떤 느낌을 가졌을지는 대체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메시지 간결할수록 파괴력 크다

이 대통령 연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길다는 점이 아닐까. ‘설교가 20분을 넘어가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해 버린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성인의 최대 집중력이 18분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조금만 재미가 떨어져도 채널이 확확 넘어가는 이 바쁜 세상에 30분이 넘는 연설을 참을성 있게 들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핵심 주제를 찾기 어려운 것도 연설이 너무 긴 것과 무관하지 않다. 8·15기념사만 해도 대통령은 광복과 건국에 대한 재평가, 안전과 신뢰의 중요성, 법과 원칙에 대한 강조, 녹색성장론, 대한민국 브랜드 등 적어도 5가지 주제를 언급했다. 요것조것 맛보라는 종합선물세트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여러 의제를 한꺼번에 제시하면 대통령이 정말 국민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메시지가 간결할수록 파괴력은 큰 법이다.

대통령 비서진의 책임이 크다. 각 분야를 담당하는 비서진이 자기 분야에서 이것도 연설문에 넣고, 저것도 연설문에 넣으려고 하니 잡탕밥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듣는 국민의 감성과 눈높이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공급자중심 접근의 결과다.

연설이야말로 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소통의 가장 중요한 통로다. 연설은 연설가가 말하는 행위이지만 듣는 과정이기도 하다. 케네디 대통령은 바로 그걸 잘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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