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연구’ 30년 집념 결심…한국 ‘사투리지도’ 나왔다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아이들이 밥을 한다, 반찬을 한다며 어른들의 살림 흉내를 내며 노는 것을 무어라 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지역별로 다른 답이 돌아온다. 소꿉질, 수꿉질, 통굽질, 도꿉놀이, 동드깨미, 반드깨미, 반주까리, 바꿈살이, 새금박질…. 한국의 방언(方言)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별로 다른 방언을 한눈에 보려면 사용 권역을 표시한 지도를 그리는 게 좋은 방법이다. 최근 출간된 ‘한국 언어지도’(태학사)가 그런 지도집이다.

한국의 첫 언어지도로 꼽히는 이 책은 30년 만에 나왔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0개년 프로젝트의 하나로 ‘언어지도’ 그리기에 착수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때문에 몇 차례 중단됐다가 이제야 빛을 봤다. 참여 학자 중 최명옥(서울대) 교수만 현직에 있을 뿐 이익섭 이병근(이상 서울대) 전광현(단국대) 이광호(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모두 정년퇴직해 명예교수가 되었다.

이익섭 교수는 “한창때 작업을 시작해 눈이 침침해진 지금에야 마무리됐다”며 “선진국에선 일반화된 언어지도를 우리도 갖게 됐으니 출간 사실 자체만으로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지도에 그려 넣은 단어는 모두 153종. 시군 단위로 전국을 답사하면서 파악한 방언의 지역별 분포의 특징도 설명해 놓았다.

언어지도의 장점은 어렵지 않게 방언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지역별 언어의 차이를 비롯해 사회 정치 문화의 동질성과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벼’의 경우, 그 방언은 ‘베’로 부르는 계통과 ‘나락’으로 말하는 계통으로 크게 나뉜다. 지도를 보면 ‘베’를 쓰는 경기 강원 충남북과 ‘나락’을 쓰는 전남북 경남북으로 뚜렷하게 갈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충남 논산, 충북 청원, 강원 영월 등 남북의 접점 지역에선 두 말이 혼용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볍씨를 뿌리기 위해 만든 자리인 ‘못자리’는 동서로 갈라진다. 그 차이의 기준은 사이시옷의 있고 없음이다. 경기 충남 전남북은 대부분 ‘못자리’ 계통이고 강원 충북 경남북은 ‘모자리’ 계통이다.

‘고구마’는 방언의 분포가 단순한 경우다. 대부분 ‘고구마’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남 일부, 충남 일부 지역에서만 ‘감자’ ‘무수감자’ ‘감재’ 등의 방언을 사용할 뿐이다.

섬처럼 고립돼 인근 지역과 다른 방언을 쓰는 경우도 있다. ‘서랍’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경상도에선 ‘빼다지’라고 하고 경남 밀양 양산 지역에서는 ‘빼담’으로 부른다.

눈에 띄는 특징은 남쪽으로 갈수록 경음이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채소인 ‘가지’를 경기 강원 충남북 경북은 ‘가지’로, 일부 시군을 제외한 전남북과 경남에서는 ‘까지’로 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언어지도’는 1985년까지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 교수는 “추가 연구를 진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하지만 사멸했을지도 모를 방언이 적지 않게 포함됐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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