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을 위한 책 20선]<2>콜레라 시대의 사랑

  • 입력 2006년 2월 2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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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선장은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본문 중에서》

당신은 사랑에 빠져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당신이 어떤 사랑을 겪고 있다고 해도, 이 책에서 당신이 가진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줄거리는 이렇다. 가난한 청년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아리따운 소녀 페르미나 다사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쌓아 온 몇 년간의 열애 끝에 그녀는 그와 결별하고 부유한 의사인 후베날 우르비노와 결혼한다. 아리사는 자신이 그녀에게 영원히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죽음이 그녀와 남편을 갈라놓을 때까지 그는 무려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린다. 우르비노가 죽자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증기선 여행에 오른다.

이 이야기에서 세월을 넘어선 사랑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50년이 넘게 한 여자만을 사랑한 지순한 한 남자의 순애보 말이다. 이렇게 보면 참 낭만적인 소설이다. 그게 아니면 사랑을 마모시켜 가는 세월의 침식작용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사는 첫사랑이 주는 달콤한 최면에서 어느 날 불현듯 깨어났고 현실적인 배우자를 선택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쉽진 않았다. 그녀는 잔소리 심한 시어머니와 시누이들 틈에서 지쳐 갔고(우리네 사정과도 참 비슷하다), 나중에는 귀족들의 삶이 가진 허위와 위선에 말라 갔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는 정이 남았다. 그녀는 그렇게 남편에게 적응했다. 이렇게 보면 참 현실적인 소설이다.

이 이야기를 반대로 읽을 수도 있다. 아리사는 다사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자 여자 사냥을 시작한다. 그는 유부녀, 과부, 노파, 소녀를 가리지 않고 여자의 몸을 탐닉했고 그 기록은 622건이나 되었다. 일회성 사랑은 빼고서도 말이다. 이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몇 편은 별도로 영화화될 정도로 내용도 다채롭다. 그녀를 못 잊어 다른 여자들이 필요했다는 것, 본래 바람둥이의 변명이다. 이렇게 보면 참 반낭만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아리사의 진심을 부정해선 안 된다. 진실로 ‘한 여자가 없었던 까닭에, 그는 모든 여자와 동시에 함께 있기를 원했다’. 그는 수많은 현실적인 사랑을 통해서 그녀에 대한 이상적인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소설에는 아리사가 사귀었던 수많은 여성이 나오는데, 이들 여성과의 만남은 사실 작가가 사랑의 여러 형식을 소개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다. 육체적인 관계가 없거나 그 관계만 있는 사랑, 지나친 소유욕 때문에 상대를 파멸시키는 사랑, 미성숙하거나 지나치게 성숙한 인격과의 사랑, 광기에 넘친 사랑,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지나쳐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진 사랑…이것은 남성 판타지가 아니라 사랑이 가진 수많은 실례인 것이다.

권혁웅 시인·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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