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당신의 목소리, 첫인상 좌우한다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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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장면. 복역 중인 ‘친절한’ 이금자는 재소자 신앙 간증회에서 높은 톤의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 여기 있어요!” 그러나 교도소를 나온 뒤 13년간 꿈꿔온 복수를 실행에 옮기려는 ‘마녀’ 이금자의 목소리는 낮고 우울한 데다 나른함이 담겨 있다. “나…, 사람 하나 더 죽이려 그런다.” 목소리의 톤만으로도 금자의 표변한 심리를 가늠할 수 있다.

#2. 인간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인 ‘메라비언의 법칙’.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메라비언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 목소리가 38%, 표정(35%)과 태도(20%) 등 보디랭귀지가 55%이며 말하는 내용은 겨우 7%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목소리가 좋으면 메시지 전달에 3분의 1 이상 성공한 것이다.

#3. 방송인 박경림은 금속성의 쉰 듯한 목소리를 콤플렉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그의 소재로 만들었다. 특이한 목소리를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은 것이다. 애교 섞인 콧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탤런트 현영은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독특한 내 목소리가 좋다”며 “이런 점도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외모와 함께 첫인상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다. 목소리를 통해 카리스마가 발현되기도 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힘이 생긴다. 연인에게 애정을 표현할 때 목소리부터 가다듬는 것은 기본 중 기본. 목소리가 개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 좋은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 좋은 목소리란?

목소리는 폐에서 공기가 나오면서 성대가 진동해 생긴다. 목소리의 특징은 기본 주파수를 비롯해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파수가 섞이는 정도(하모닉스), 울림(공명)에 의해 결정된다. 남자 목소리의 기본 주파수는 100∼150Hz, 여성은 200∼250Hz인데 100Hz는 1초에 성대가 100번 진동한다는 뜻. 소리가 높아질수록 주파수가 높다.

그렇다면 좋은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조선 시대에는 느리고 낮은 음으로 늘어지는 목소리를 가져야 양반답다고 인식됐다. 미국인은 약간 높은 음의 영국 악센트를 선호하며 북한에서는 강하고 선동적인 목소리를 좋아한다. 현대에서 일반적으로 좋은 목소리는 명료하고 깨끗하며 톤이 약간 높고 하모닉스와 울림이 좋아 느낌이 풍부한 소리를 말한다.

호감과 함께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 뉴스 앵커를 예로 들어보자. 음성 전문클리닉인 예송이비인후과(서울 강남구 신사동) 김형태(42) 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MBC 김주하 앵커는 기본 주파수가 190Hz 정도로 여성으로서는 매우 낮은 편이어서 중성적이며 지적인 느낌을 준다고 한다. KBS 정세진 앵커는 220Hz로 단정하고 깔끔한 목소리이며 SBS 김소원 앵커는 230Hz 정도로 다소 높은 톤이라 명료도가 높다.

김 원장은 연예인 중 목소리가 좋은 사람으로는 배우 한석규와 가수 비를 꼽았다. 성우 출신의 한석규는 명료하고 차분하며 하모닉스가 좋아 느낌이 풍부한 목소리, 독특한 중저음의 소유자인 가수 비는 명료한 음색은 아니지만 연인으로서 가장 듣기 좋은 호감 가는 목소리를 가졌다.

○ 이럴 때는 이런 목소리

사람을 매료시키려면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타고난 연설가였던 히틀러는 악센트가 강하고 톤이 높은 목소리로 청중들을 선동했다. 연설을 할 때는 듣는 이가 긴장하도록 톤을 높여 강하게 해야 한다.

반면 카운슬러나 컨설턴트는 부드럽고 중성적인 목소리로 말해야 안정감을 준다. 면접 때에는 원래의 목소리와 속도를 유지하면서 톤을 일정하게 하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먼저 말하면서 약간 악센트를 주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목소리를 다양하게 구사해야 한다. 데이터를 말할 때는 소리를 높이고 성과를 말할 때는 짧게 끊듯이 강하게 말해야 하며 제안할 때는 톤을 낮춰 부드럽게 말해야 설득의 효과가 커진다.

목소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전략을 토대로 목소리를 구사한다.

KBS 김경란 아나운서는 “오락 프로그램인 ‘스펀지’에서는 본래 목소리대로 편안하게 말하고 뉴스를 할 때는 톤을 낮추고 힘을 실으며, 청중이 많은 ‘열린 음악회’를 진행할 때는 소리를 더 크게 내면서 소개하는 음악에 따라 톤과 속도를 바꾼다”고 말했다.

MBC 라디오 ‘57분 교통정보’의 김희조 리포터는 “1분 남짓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톤을 높여서 빨리 말하며 정보가 귀에 잘 들어오도록 콕콕 찍어주듯 발음한다”고 말했다. 대형사고가 나거나 심한 정체구간이 있으면 악센트를 주는 것은 기본.

114 안내를 운영하는 한국인포서비스 서울본부의 교육담당 박정숙 대리는 “안내원들은 고객에게 상쾌한 느낌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약간 높여 ‘미’나 ‘파’ 음을 낸다”며 “전에는 ‘솔’에 가까운 음을 냈지만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설득할 때는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설득은 다르다. 홈쇼핑의 쇼호스트들은 매우 주파수가 높은 목소리로 톤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말을 빨리 한다. 시청자를 자극해 ‘꼭 사야 할 것 같은’ 구매욕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다.

○ 이성에게 매력적인 목소리

일반적으로 남성은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 여성은 비음이 살짝 섞이거나 허스키한 듯 착 감기는 목소리가 섹시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파트리크 르무안 씨의 책 ‘유혹의 심리학’에 따르면 네덜란드 레이덴대의 연구진이 남성들의 음성만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신체적 특징을 연상하게 했더니 높은 테너보다 저음의 바리톤 남성이 키가 크고 근육질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르무안 씨는 남성들은 변성기를 거치면서 목소리가 낮아지는데 테너는 사춘기의 변화를 겪지 못한 미성숙한 남성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성(性)적 매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올해 5월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실시한 온라인 투표 결과 영국인들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목소리의 소유자는 부드러운 저음의 숀 코너리였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버트 그린 씨는 ‘유혹의 기술’에서 나폴레옹의 아내 조제핀은 이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나른한 목소리를 가졌으며 20세기 섹스 심벌인 메릴린 먼로는 속삭이는 듯한 어린아이 목소리를 가졌지만 나중에 목소리를 더 낮게 깔아 유혹적인 음성으로 변화시켰다고 했다. 영화 ‘원초적 본능’의 섹시 스타 샤론 스톤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강희선 씨는 “샤론 스톤의 목소리를 연기할 때는 톤을 낮춰 약간 늘어지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명료하고 톡톡 끊어지는 소리보다 여운을 남기는 듯한 소리가 섹시하다는 것.

그러나 음성 전문가들은 섹시한 목소리가 꼭 이성에게 호감을 주지는 않으며 현대의 좋은 목소리에 대한 정의와도 거리가 있다고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데이트를 나누고 있는 남녀의 대화를 분석한 결과, 한 가지 톤보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며 말하는 여성이 남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 목소리도 성형하는 시대

하늘하늘한 몸매를 가진 미모의 트랜스젠더 이모(26) 씨는 늘 목소리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평소에는 가성을 내지만 술을 먹었을 때나 갑자기 놀란 소리를 낼 때는 남자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최근 음성 성형을 받은 그는 “이제야 진짜 여자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낮은 소리를 내는 것은 성대가 길고 크기 때문. 현이 길고 굵은 악기가 낮은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수술을 통해 성대를 축소하면 목소리가 여성처럼 변한다. 김형태 원장은 “19명의 트랜스젠더에게 음성 성형수술을 실시한 결과 목소리의 주파수가 평균 137.3Hz에서 수술 뒤 평균 211.5Hz로 약 74.2Hz가 상승해 높은 톤의 여성 목소리로 변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고음의 목소리를 지닌 남성의 경우 성대 근육 중 목소리의 톤을 높이는 근육에 보톡스를 주입해 높은 음을 내지 못하게 하거나 성대 근육에 보형물을 주입해 작은 성대를 크게 만드는 성형을 한다. 역시 주파수를 70Hz 정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 밖에 쉰 목소리나 거친 목소리, 떨리는 목소리도 성대에 보형물을 주입하는 성형을 통한 교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병적인 문제가 없다면 발성 연습을 통해 목소리를 더욱 좋게 다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복식호흡을 꾸준히 연습하는 것도 목소리를 좋게 한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그게 남들이 듣는 목소리다. 자신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얼굴 안에서 진동하는 소리와 귀에 들리는 소리가 합쳐진 소리이기 때문. 녹음을 해서 들어보면 자기 목소리의 결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글=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

▼스타들의 ‘촉촉한 목소리’ 관리법▼

성우 강희선 씨는 날씨가 조금이라도 쌀쌀해지면 목에 스카프를 감고 잔다.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이어서 날씨의 변화에도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는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며 목이 피곤하면 돼지고기를 먹고 푹 잔다”며 자신만의 목소리 관리법을 소개했다.

SBS ‘8 뉴스’의 박상규 앵커는 “목소리는 몸의 컨디션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며 “수면 부족, 과로, 과음은 즉각 목소리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늘 무리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 진행을 맡은 뒤 담배를 끊었으며 자주 물을 마시고 방송 중에도 틈틈이 목을 축여준다. 노래방에 가서도 노래를 많이 부르지 않는다.

가수 조용필은 젊었을 때 ‘탁음’을 얻기 위해 목에서 피가 나도록 노래한 적 있다. 목 건강은 타고난 편이지만 콘서트를 앞두고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최근에는 담배도 끊었다. 그는 “가수로서 노래를 멈추지 않는 게 목소리를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소리는 몸 상태가 좌우하기 때문에 체중 등에도 항상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가수 이승철도 콘서트를 앞두고는 모임 등 일정을 전혀 잡지 않고 말도 줄인다. 사석에서 무리하게 목을 쓰는 것도 삼간다.

목을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이처럼 나름대로 목소리 관리법을 지니고 있다. 의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일까.

목소리는 성대가 진동하면서 생기기 때문에 성대의 점막이 항상 촉촉해야 진동이 원활해지면서 진동의 충격도 줄어든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 2리터 정도의 물을 마시는 게 좋다. 목이 건조해져 소리가 잘 나지 않을 때는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좋다. 담배는 성대를 건조하게 하고 점막에 염증도 일으킨다. 술의 알코올 성분도 점막에 자극을 준다. 커피 등 카페인이 든 음료, 탄산 음료나 초콜릿도 성대를 마르게 한다. 기름진 음식은 위산을 후두 쪽으로 역류시키므로 성대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자극이 적고 부드러운 음식이 목에 좋다.

연설 등 큰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먼저 편하게 가다듬은 뒤 서서히 목소리를 키우도록 하며 연설 도중에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큰 소리는 물론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도 좋지 않다. 작은 목소리는 편안히 내는 소리보다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 성대 근육에 무리를 준다. 헛기침을 하는 습관도 목에 무리를 준다. 여성의 경우 생리 전이나 임신 초기에는 호르몬 변화로 인해 성대가 붓게 되므로 쉽게 손상될 우려가 있다. 이때에는 말을 많이 하거나 노래를 하는 등 성대 자극을 피해야 한다. 스카프 등으로 보온하는 것은 성대 근육을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있으나 너무 꽉 조이면 역효과가 난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이비인후과 진성민 교수는 “날달걀이나 참기름, 올리브 오일을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목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목소리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므로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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