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치안은 엉망인데…'뻔뻔한 경찰'

  • 입력 2003년 6월 20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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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사회1부
이 훈 사회1부
강력반 형사가 납치 강도를 벌인 사실이 언론에 의해 뒤늦게 밝혀진 19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이근표(李根杓) 청장은 지휘라인에 있던 4명의 경찰 간부를 직위해제한 뒤 자청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납치 강도를 저지른 강력반 형사의 신분을 무직이라고 발표한 이유는 뭡니까.”(기자)

“사표가 수리된 게 4월 26일이고 검거된 날짜가 5월 7일이니까 무직이 맞지요.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청장)

“범행을 저지르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니까 사표를 낸 것이고, 경찰의 보도자료는 통상적으로는 범행 당시 직업을 표시하는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의도가 아닙니까.”(기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는 것 아닙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해 좀 해주세요.”(청장)

인지상정(人之常情)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누구나 갖는 보통의 생각’이라고 나와 있다. 요즘 시민들 누구나가 갖는 보통의 생각은 아마도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일 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납치, 성폭행, 떼강도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현직 강력반 형사가 피의자로 만난 강도들과 손잡고 복면을 쓰는 어처구니없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또 경찰 간부의 뇌물수수와 기강해이 사례도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최기문(崔圻文) 경찰청장은 취임 후 참여정부의 ‘코드’에 맞게 ‘함께하는 치안, 편안한 사회’라는 구호를 지휘 지침으로 결정하고 전국의 파출소, 경찰서 건물마다 간판으로 만들어 내걸었다. 개혁을 추진한다며 청장 직속의 경찰혁신기획단을 만든 것은 물론이고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경찰혁신위원회도 발족했다.

그런데 정작 청장이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지휘 지침은 불과 두 달 만에 ‘함께하는 범죄, 불안한 사회’라는 비웃음을 사고 있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개혁이나 혁신, 변화 모두 다 좋은 말이지만 경찰의 본령은 ‘도둑을 잡는 것’이다. 사는 게 불안하다면 경찰 개혁 구호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복면을 쓴 형사를 ‘제 식구’라고 감싸면서 인지상정을 들먹이고 경찰의 본령보다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경찰 수뇌부의 현실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함께하는 치안, 편안한 사회’는 요원할 것 같다.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오늘의 경찰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으면서 정작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는 깨닫지도 못하는 총체적 기강해이 상태, 바로 그것이다.

이훈 사회1부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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