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04분


코멘트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지음 조경식 옮김/212쪽 2만원 한길사

헤르더는 국내에 별로 소개된 적이 없는 독일의 문학이론가이자 역사학자, 신학자, 철학자이다. ‘질풍노도’ 문학운동의 선구자인 그는 스스로 위대한 문학작품을 남겼다기보다는 괴테로 대변되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이 만개하는 데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고, 시간과 변화를 강조하는 독일 역사주의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의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는 18세기 중반 베를린 학술원에서 프랑스 학자와 독일 학자사이 집중적으로 벌어진 언어기원 논쟁의 산물이다. 이 책에서 헤르더는 ‘동물적인 의사소통방식이 인간 언어로 점진적으로 이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한 콩디야크의 주장 및 ‘언어는 신적 이성의 산물’이라는 쥐스밀히의 견해를 비판한다.

헤르더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언어기원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에 비해 감각과 본능에 있어 훨씬 뒤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성’ 혹은 ‘성찰’이라는 타고난 사고력이 있어 인간의 신체상의 결핍을 보충해주는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자신의 언어기원론의 핵심명제를 내세운다. “인간이 자기 본래적인 성찰의 상태에 놓이고 이 성찰(반성)이 처음으로 자유롭게 작용하면서 인간은 언어를 발명했다.”

그는 ‘성찰’에 의해 파악된 외부대상의 특징인 ‘내적인 언어’와 이 특징이 음성기관을 통해 구체적으로 발화된 형태인 ‘외적인 언어’, 이 두 언어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으로서의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언어의 다의성’뿐만 아니라 ‘언어의 변증법’을 제시한다. 이어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신체적인 측면을 고찰한다. 그에 따르면 다른 감각적인 자극과는 달리 소리는 영혼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소리를 매개해주는 청각은 언어감각으로 작용한다.

언어발명 능력에 대한 헤르더의 견해를 살펴보면 심리학과 감각생리학을 포괄하는 인간학적인 측면에서 그가 이 문제를 고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의 타고난 ‘성찰’이 청각과 상호작용함으로 발명된 것이다. 따라서 헤르더는 인간의 감각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콩디야크나 신적 이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자발적인 활동가능성을 제약하는 쥐스밀히와는 구별되며, 그의 언어관은 콩디야크의 감각론적인 측면과 데카르트의 이성론적인 측면을 종합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헤르더가 근대 언어철학에서 차지하는 나름의 위치가 드러난다.

결핍된 존재로서 인간이 언어를 발명하는 과정을 기술한 헤르더의 이 논문은, 요즘 인문학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문화학의 한 갈래인 ‘역사적 인간학’의 측면에서 볼 때 필독할 만한 저서이다. 특히 바움가르텐적인 의미의 ‘미학’(감성적 인식의 학문) 차원에서 이 논문을 헤르더의 또 다른 저서 ‘비판의 숲’ 그리고 ‘조각(Plastik)’과 함께 비교해서 읽는다면 감각의 역사를 조명하는 데도 유익할 것이다.

헤르더의 글쓰기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기보다는 시적이고 단편적이기에 난해하다. 역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에 따라 원문을 병기하고 개념을 번역함에 있어 좀 더 일관성을 지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대권 서울대 강사·독문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