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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미술관' 마산시에 기증키로 한 부인 최성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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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미술관' 마산시에 기증키로 한 부인 최성숙씨

입력 2002-11-13 18:07수정 2009-09-1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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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문신의 ‘비상’과 함께 한 아내 최성숙씨./이종승기자

파리 체류 20여년간 유럽 각국에서 100여회에 걸친 전시를 통해 독특한 조형 세계를 선 보여 한국 조각의 위상을 높인 조각가 문신(文信·1995년 작고).

그의 아내 최성숙(崔星淑·56)씨는 79년 서른 셋에 스물 네살 연상이었던 문신과 결혼했다. 서울대 미대 동기였던 첫 남편이 결혼 생활 9년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최씨는 달아나듯 독일로 떠났고 2년 뒤, 우연히 파리에 갔다가 재불 화가 모임에서 문신을 만났다. 문씨에게는 10년 넘게 동거해 온 독일인 여자가 있었고 최씨에게도 구애를 해 온 화가가 있었지만 두 사람의 결혼을 막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79년 5월 최씨 집 주방 식탁에서 최씨 부모님만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다.최씨는 남대문 시장에서 산 티셔츠와 치마 하나 달랑 입고 예배하는 것으로 식을 대신했다고 한다.

문씨는 국내외적으로 탄탄한 자리를 매김할 무렵인 80년 마산으로 영구 귀국했다. 그리고 고향 앞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추산동 가파른 언덕에 미술관을 지었다. 부부는 직접 돌멩이를 골라내고 축대와 담을 쌓아 14년에 걸쳐 미술관을 완성했다. 당시 한 미술평론가는 ‘문신이 평생 이력서를 땅에 쓰고 있다’고 표현했다.

생전의 문신 부부.

말수는 적었지만 엄청난 정열의 작가로 알려진 문씨는 강철같이 단단한 흑단과 쇠나무를 재료로 조각 작품을 빚어내는 씨름을 해왔다. 톱과 쇠깎는 기계를 다루는 그의 두 손은 선반공처럼 거칠었다.

가장 가까이 그를 지켜 보았던 아내 최씨는 그를 ‘지독한, 치열한 작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작품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아내로서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남편이 아니라 스승이었어요. 남들은 희생이니 헌신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을 통해 박사 학위 논문 하나 뗀 것 같아요.”

문씨는 미술관 개원 1주년을 사흘 앞둔 95년 5월23일 일흔 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남편 사후 미술관을 맡아 관리해 왔다. 그리고 8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문신미술관을 마산시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문신 미술관’은 대지 2500여평에 전시실 작업실에 조각 105점, 수채화 유화 등 문신의 작품 290점이 있다. 굳이 돈으로 치자면 집을 포함해 시가로 100억원 대에 달한다.

“남들이 미쳤다고 합디다. 하지만 미술관은 사유 재산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고인의 뜻이기도 했구요.”

최관장은 미술관을 기증하면서 생의 또 다른 무대로 옮겨가고 있다. 누구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예술가로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1986년 호암 갤러리 주최 한국화 86인 초대전에 꼽힐 정도로 유망한 화가였던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홀가분하게 붓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남편의 전처 소생들을 아직도 헌신적으로 돌보는 착한 여자 최성숙. ‘담요 한 장에 붓 한자루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그녀의 예술혼이 어떻게 꽃피울 지 궁금해진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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