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승 화가와 어머니…원성-금강스님의 '인연'

  • 입력 2002년 7월 8일 18시 25분


“어미와 자식이기 이전에 전생에 둘다 중노릇을 했던 것 같다”며 활짝 웃고 있는 원성 스님(왼쪽)과 금강 스님. [사진=김경제기자]
“어미와 자식이기 이전에 전생에 둘다 중노릇을 했던 것 같다”며 활짝 웃고 있는 원성 스님(왼쪽)과 금강 스님. [사진=김경제기자]
《동자승 그림으로 유명한 원성 스님(31).

그만큼 종교를 떠나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스님이 있을까. 그의 그림 에세이 ‘풍경’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림 속 바로 그 동자승을 닮은 그의 해맑은 웃음은 그를 수많은 ‘연애 편지’를 받는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최근 사진 에세이 ‘시선’(이레)을 출간한 그를 서울 돈암동 대불정사에서 만났다.

특별한 만남이었다. 그의 곁에는 ‘어머니 스님’으로 알려진 금강 스님(61)이 함께 있었다. 아들인 원성 스님을 먼저 출가시킨 금강 스님은 자신도 5년전 출가했다. 두 스님이 함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s 속을 뚫고 자신을 찾아온 기자의 ‘발품’이 고마웠을까. 원성 스님은 자신의 책에 슥슥 솜씨좋게 동자승 그림을 그려넣고 그 옆에 ‘좋은 인연,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글을 썼다.

인연? 어머니와 아들, 불법을 몸으로 전해준 스승과 제자, 구도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道伴).

이런 인연도 있을까?

-여러가지로 뜻밖입니다. ‘시선’이 그림이 아닌 사진 에세이라는 점이나 두 스님을 함께 보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지난 3월에 26일간 금강 스님과 함께 인도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과 글을 책에 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금강 스님과 긴 여행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 여행이 금강 스님과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을 모아 앨범으로 만들 생각이었는 데 책으로 드리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금강스님은 이 책에 수시로 ‘모델’로 등장한다. 금강 스님은 “인도는 평생 가보고 싶던 곳이라 내가 졸랐다”면서 “원성 스님이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랑 함께 한 그 여행길은 구석구석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속적인 정과 거리를 둬야 하는 출가자에게 모자의 연이 너무 긴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쉬쉬 할 것도 아닙니다. 전 금강 스님이 같은 길을 가는 도반으로, 스승으로, 어머니로 자랑스럽습니다. 출가자가 어머니를 등져야 하는 가는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출가자에게 색심(色心)을 일으켰다면 그게 여자의 잘못입니까. 수행자의 잘못입니다. 아들이 어미를 업고 수미산(須彌山)을 오른다 한들 그게 허물이 되겠습니까.”

-원성 스님, 금강 스님께 서운한 적은 없었습니까.

“91년 동성고 3학년 때 출가했습니다. 그때 집에서는 출가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어머니는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셨고. 어릴 때라 기분이 묘했습니다.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이 떠나는 데 이별의 눈물조차 선물받지 못한 남자의 느낌이랄까요.” (원성 스님)

“원성 스님의 마음이 변할까 걱정됐습니다. 그 뒤 ‘후회하느냐’고 이따금 물었지만 원성 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나 원성 스님이나 어미와 자식이기 이전에 전생에 둘다 중노릇을 했던 것 같습니다.” (금강 스님)

이야기 꼬리가 ‘시선’에 실린 원성 스님의 사진 솜씨로 넘어가자 금강 스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원성 스님은 어릴 때부터 그림과 글씨, 피아노까지 한번 손대면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전생에 감겨 있던 어떤 예술가의 ‘인생 필름’이 원성 스님을 만나 영화처럼 상영되는 것 같았습니다. 웬 일인지 몰라요. 심지어 요리조차 비구니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솜씨가 좋습니다.”

-하버드대 출신인 현각 스님은 유명세 때문에 수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원성 스님도 재능과 인기 때문에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배움이 짧아 현각 스님을 입에 올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하는 일과 공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글과 그림은 내 수행의 한 방편입니다. 올 겨울부터 선방을 찾아 수행할 생각입니다.”

-꼭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승가대에서 사회복지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5년 뒤쯤 미술과 음악 등 예능 교육이 가능한 고아원을 세우고 싶습니다. 영화 ‘산사 이야기’(가제)의 시나리오를 쓰고 책을 내고 그림을 그린 게 모두 이런 꿈 때문입니다.”

-원성 스님, 요즘에도 여성 팬레터가 많이 오는지요.

“그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답답합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이나 내 모습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전 ‘풍경’부터 ‘거울’ ‘시선’까지 줄곧 이런 마음을 책에 담았습니다. ‘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죠.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만약 색으로 나를 보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음성으로 나를 보려거든)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이런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능히 여래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림과 글 때문에 저잣거리에 나온 ‘햇중’, 아니 이런 말쓰면 혼나죠. ‘햇스님’인 제가 자주 떠올리는 경구입니다.“

금강 스님은 원성 스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부처님 법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인연으로 만났겠나. 속세에서는 어미와 아들로, 이제는 도반이 된 스님으로. 부처님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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