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맛있게/음식과 섹스]식욕 좋으면 성욕도 강하다?

  • 입력 1999년 9월 9일 19시 21분


“그것은 젤리가 틀림없어. 잼이라면 그렇게 흔들릴 리가 없거든.”

여기서 그것이란 여성의 가슴을 은유하는 말. 셰익스피어의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 음식과 관련된 단어가 성적인 의미로 쓰였다.

▼뇌의 같은부분서 관장 ▼

성(性)과 식(食). 이 둘은 인간에겐 불멸의 관심사이자 가장 기초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규환 한마음신경정신과원장은 “생리학적으로 식욕과 성욕을 관장하는 영역이 뇌의 부분중 변연계에 함께 있다”며 두가지 욕구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말한다. ‘거식증과 섹스혐오증’ ‘폭식증과 섹스탐닉증’은 적지 않은 관계가 있다는 얘기.

이같은 연관성은 인간의 생리적 본능이나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욕망을 그린 영화나, 그러한 욕망을 통해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섹스와 음식의 상관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 암흑가 두목의 무지막지한 포식습관은 성적 가학적 행동으로, 나아가 힘과 권력의 행사로 이어졌다.

▼영화―광고의 단골메뉴 ▼

‘나인 하프 위크’ ‘하몽하몽’ ‘달과 꼭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의 영화를 비롯, 한국영화 ‘301,302’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음식을 섹스의 도구로 적나라하게, 또는 은밀하게 연결시킨 대표적 영화.

광고 역시 성적 표현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다. 일상언어에서도 식욕과 성욕이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특히 식품광고는 성적 언어의 유희마당이다. ‘맛있다’라는 말 속에 야릇한 성적 연상이 담겨 있고, 예쁘고 날씬한 여자 탤런트는 과자를 들고 “내껀 촉촉해”라고 미소짓는다.

식욕과 성욕의 연관성에 대해 일찍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동료이자 성도착증의 권위자였던 크라프트 에빙은 “배고픔과 사랑이 이 세상 모든 일을 지배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쾌락의 추구에서 음식과 섹스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이같은 연관성에도 불구, 음식과 섹스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음식의 맛 자유의 맛’을 쓴 미국의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의 지적에 따르면 음식에 대한 끝없는 욕구와는 대조적으로 성적 욕망은 엄청난 문화적 조작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

식욕과 성욕은 정서에 따라 달라진다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성욕이 훨씬 더 정서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또 이 두 가지 특성은 자아상(自我像)에도 영향을 미쳐 남성의 경우 성욕이 강할수록 긍정적 자아상을 가진다는 연구가 있다.반면 여성은 자아상을 높이기 위해 식욕을 억제, 마른몸매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 여성은 때로 요조숙녀로 보이기 위해 성욕을 억누르거나,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섹스어필을 한껏 뽐내기도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아줌마’들이 남성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성적 억압에서 풀려난 세대이기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성욕 억제 노동력으로 ▼

그러나 기본적으로 문명의 발달과 식욕이 비례하는 반면 성욕은 반비례하는 특성이 있다고 임상심리학자 심영섭씨는 분석한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성욕을 억압하고, 그 억제된 성욕을 노동력으로 변환시키려는 속성을 보인다는 것. 이에 대한 욕구불만은 고도로 발달한 요리법을 통해 달래지게 된다. ‘비아그라’는 후기산업주의 억압된 성욕 성적능력에 대한 일종의 혁명인 셈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맛있는 요리를 택하겠는가, 즐거운 섹스를 택할 것인가.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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