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우당탕탕]〈16〉마마보이가 김밥을 고르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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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방송작가를 하면서 막내 작가 면접을 볼 때가 있다. 방송작가는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이다 보니 수염을 기르거나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뭐 그런 건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콧수염에 구레나룻까지 기르고 탄탄한 몸매에 터프한 워커를 신었는데 일을 시켜보면 마마보이 근성이 나오는 친구들이 있다. 굳이 ‘SKY 캐슬’ 얘기를 하지 않아도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가 다니라는 학원을 다니고, 엄마 정보력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엄마가 대학교도, 심지어 전공도 정해준 학생들이 많다. 취직할 때도 엄마가 채용공고를 보고 코치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 보니 엄마가 곧 ‘김주영 선생님’이고, ‘김주영 선생님’이 곧 엄마인 셈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엄마의 선택으로 자란 친구들은 대부분 결정 장애가 있다. 난 막내 작가로 뽑은 친구들에게 두 가지 심부름을 시켜본다. 첫 번째는 김밥. 회의 도중 밥 먹으러 가기 애매하면 카드를 주며 시킨다. “우리 김밥 먹고 할까? 분식집에서 김밥 좀 사다 줄래?” 그러면 막내 작가는 일단 활기차게 나간다. 그러나 분식점에 들어선 순간 동공 지진을 경험한다. 김밥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참치, 야채, 소고기…. 대부분의 막내작가는 제일 싼 야채김밥 여섯 줄을 사온다. 이런 친구들은 센스도 없고 고민도 없고 대부분 1년 안에 그만둔다.

그나마 다행인 친구들은 늦었지만 분식집에서 전화로 “선배님, 김밥 종류가 너무 많은데 어떤 걸로 사갈까요?” 물어보는 친구들이다. 조금 더 센스가 있는 친구는 김밥을 종류별로 사온 후 “다양하게 맛보시라고 종류별로 사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의 터프한 마마보이는 분식점 주문대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선배님들이 김밥 사오라는데 무슨 김밥 사가지?” 지금까지 여러 명에게 김밥 심부름을 시켜봤지만 “어떤 김밥 드실지 주문받겠다”고 미리 말한 막내 작가는 없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회의가 길어지고 아이디어가 잘 안 나올 때 내 카드를 주면서 “커피 한잔 마시고 하자!”라며 심부름을 시키면 김밥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대부분 아메리카노 여섯 잔 사오거나 종류별로 여섯 잔을 사오거나. 얼마 전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친구가 거들었다.

“대학도 마찬가지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학부생 어머니더라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들이 수강신청을 못했는데 자기가 날짜를 잘못 알려줘서 수강신청을 못했다고, 자기가 잘못했으니 수강신청 하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시더라.”

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데, 이런 일은 회사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라며 회사원 친구가 말했다.

“나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신입사원 어머니더라고. 자기가 늦게 깨워서 아들이 지각할 거 같다고. 아들이 늦게 일어난 게 아니라 자기가 늦게 깨워서 그런 거라고.”

“그 친구 겉모습은 터프하지 않냐?”

“완전 상남자. 키 180에 근육맨.”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마마보이#직장생활#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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