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유신]경쟁력 높일 수 있는 대학평가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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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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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기관을 중심으로 대학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발전이 평가의 목표이지만, 평가 기준은 철학적 원리에 기초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평가의 의미가 올바른 해석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대학 평가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평가 결과를 해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맹신하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발전보다는 후퇴를 겪게 되고 잘못된 인재의 양성으로 사회에 큰 폐를 끼칠 수 있으며, 이러한 우려가 한국에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에서의 대학 평가는 잡지 정도에 실리어 하나의 참고 자료로 활용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일간지 일면에 평가 결과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대다수의 대학은 평가의 올바른 의미를 찾기보다는 학문 분야에 관계없이 평가 결과를 마치 대학의 경쟁력에 대한 절대적 지표인 것처럼 착각하여 그 결과에 맞추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평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의대, 공대가 큰 대학, 인문사회과학을 강조하는 대학 등 대학의 다양한 목적과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연구 항목에서 전공에 관계없이 논문 편수라는 동일 잣대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여 서열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평가의 철학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 철학이 제시되지 않은 평가와 그 평가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대학과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공과대학이나 자연대학의 경우, 평가에 부합하기 위한 논문 수의 강조는 외국대학에서는 잘 하지 않는 전공분야와 실험분야에 치중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실험 데이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한국 대학이 실험 데이터 공급 경쟁력에서만 강하고, 개념적이고 창조적 사유가 필요한 독자적 이론, 원천기술의 창조력에서는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대학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유학시절 외국 교수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실제로 들었다.

사회대학 및 인문대학이 종합대학에서 갖는 중요한 역할은 사회학적, 인문학적 상상력을 모든 학생이 갖도록 개념적 사유와 이론적 분석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올바른 시민으로 사회를 살아갈 수 있다. 대학이 무차별적으로 논문 편수를 강조하는 정책을 펴면, 학문적 상상력과 개념적 사고를 훈련하는 학과는 약화되고, 논문이 많이 나오는 실용적 학과는 강화될 것이며, 그 결과 기초교육은 부실해지고, 절름발이 인재들이 사회로 배출될 것이다. 또한 교수들은 깊은 사고나 시간이 필요한 연구주제나 전공을 포기하고, 단시간에 논문이 많이 나오는 주제나 전공으로 분야를 바꾸려 할 것이다. 이는 결국 교수 개인의 연구력 약화는 물론 자부심을 상실시키고, 깊은 사고를 요하는 교육이나 학생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것이다. 논문 수의 증가를 목표로 하여 격심한 경쟁을 강조하는 정책은 결국 연구의 즐거움과 학문에 대한 경외심, 개념적이고 자발적인 독창적 사유와 성찰 능력을 가진 인재교육의 꿈을 대학에서 박탈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교육은 황폐화되고, 대학의 연구력도 상실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의 참된 경쟁력을 강화하는 올바른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대학의 참된 경쟁력은 논문 편수보다 개념적이고 독창적 사고력, 실험적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연구력과 이를 교육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대학은 다른 기관과 달리 학문적 권위에 대한 존경심과 진리에 대한 경외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아카데미의 원천이다. 이 원천은 깊고 광활할수록 큰 나무를 가꿀 수가 있다.

대학이라는 나무에서만 경외심, 다양성, 개념적 사유 그리고 성찰성을 갖춘 인재를 꽃피울 수 있다. 올바른 대학관에 기초한 평가는 이 나무에 가지를 치고 물을 주는 것이다. 이때 대학은 경쟁력이라는 또 하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김유신 부산대 교수 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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