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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일그러진 ‘건축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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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일그러진 ‘건축의 진실’

동아일보입력 2010-04-07 03:00수정 2010-04-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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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모형을 허겁지겁 버스로 운반?… 프레젠테이션을 홀로그램으로?…

본격 건축드라마 내세운 MBC ‘개인의 취향’ 이런 건 좀…
3월 31일 방영을 시작한 MBC TV 수목 드라마 ‘개인의 취향’은 ‘건축 드라마’다. 건축가 전진호(이민호)와 유명 건축가의 딸인 가구제작자 박개인(손예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건축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다. 건축은 드라마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가 아니다. 설계실 등 건축 업무 장면이 나온 미국 영화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년), ‘어느 멋진 날’(1996년) 정도다. ‘개인의 취향’은 첫 회부터 아트센터 설계공모 심사가 주요 장면으로 쓰이는 등 최근 부쩍 높아진 우리 사회의 건축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하지만 이야기 설정과 디테일은 ‘본격 건축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다. 장윤규 운생동건축 대표(국민대 교수)는 “방영 시작 전에 몇몇 건축가에게 성원을 당부하는 서신을 보내왔기에 관심 있게 시청했는데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아 그만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니까…’ 하고 보아 넘기기 어려운 장면들을 짚어 본다.
① 홀로그램 프레젠테이션?… 오히려 감점 요인


대형 건축사무소에 이어 설계공모전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진호. 설명회장의 불을 끄자 심사위원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 용지의 풍광을 축소한 홀로그램이 뜬다. 진호는 홀로그램 한복판에 건물 모형을 앉히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산과 강, 호수. 사람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자연에 또 하나의 자연을 더하려 합니다. 자연, 사람, 문화가 어울리는 친환경적 공간입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우는 청중의 박수 소리.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건축가들은 설계의 기본 개념과 그것을 설계안에 구현한 방법을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설명 뒤에 쏟아지는 것은 박수가 아니라 질문 세례다. 드라마와 달리 건축주의 사무실 등 비공개 장소에서 입사면접처럼 상대편 관전 없이 진행한다. 질의응답을 공개하면 다음 차례 팀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홀로그램 모델은 구현이 가능하다 해도 사용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내용물에 대한 판단을 흐리는 불필요한 장식으로 여겨져 감점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작품 모델을 들고 버스에?… 상상도 못할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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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날 아침. 진호는 집에서 침대에 누운 채 눈을 뜬다. 옆에는 애인이 누워 있다. 마감이 임박하면 집에 가기는커녕 씻을 틈도 내기 어려운 현실세계 건축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계획안 모델을 들고 프레젠테이션 장소로 가던 진호는 택시를 잡지 못해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에서 만난 여주인공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공들여 만든 모델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난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인 모형은 대개 하루 또는 몇 시간 전에 운반해 놓는다”며 “버스 운반은 코미디에 가까우며 실제로 그러다 망가뜨렸다면 그것만으로도 해직 사유”라고 했다. 모델이 손상될 경우에 대비해 실제 건축가들은 미리 예비 부품과 작업도구를 준비한다.

드라마에서처럼 행사장 창문 블라인드를 몰래 잘라내 재료로 쓰는 일은 있을 리 만무하다.
③ 시공사에 막말하는 건축가?… 현장에 다신 발 못붙여

공사 중인 건축물 감리를 위해 부하직원과 함께 안전모를 쓰고 공사현장을 찾은 주인공. 현장감독에게 공사 진척이 더디다고 다그치다 “힘들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인부들이 있으면 다 내보내라!”고 소리치더니 몸을 휙 돌려 나가 버린다.

건축의 결과물은 설계안이 아니라 실제 건물이다. 현장에서 건축가와 시공업자의 관계가 긴밀할수록 품질 높은 건물이 나온다. 현장감독과 인부들 사이에서는 간혹 분란이 생기지만 건축가가 현장 인력을 아랫사람 부리듯 함부로 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권문성 아뜰리에17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다시 현장에 발을 디딜 수 없을 것”이라며 “건축가 본인이 건축주라면 혹 모르겠지만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류는 드라마의 주요 배경인 한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주인공의 집 대문 위에는 ‘상고재(相B材)’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서현 교수는 “‘항상 연모하는 집’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집 재(齋)’를 써야 했을 것”이라며 “재료 재(材) 자를 현판에 붙인 건물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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