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이름 아버지는 Park, 자녀는 Bak?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국어원 성씨표기 표준안 논란
“성인은 기존 표기 안바꿔도 돼”

국립국어원(원장 권재일)이 25일 제안한 이름 성씨의 로마자 표기 표준안 시안이 있으나마나 한 규정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립국어원 정희원 어문연구팀장은 이날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성씨와 로마자 표기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씨는 ‘Kim’으로, 이씨는 ‘Yi’로, 박씨는 ‘Bak’로, 노씨는 ‘No’로 표기할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성씨 로마자 표준 표기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주로 ‘Choi’로 표기돼 온 최씨는 ‘Choe’, 정씨는 ‘Jeong’, 강씨는 ‘Kang’, 조 씨는 ‘Jo’로 적게 된다.

문제는 국립국어원이 이 표준안의 적용 범위를 “역사 속 인물이나 이름을 처음 로마자로 적는 사람을 위한 기준”으로 한정한 것. 대다수 성인이 사용하고 있는 성씨의 로마자 표기는 시안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이홍식 숙명여대 교수는 “(이러면) 이미 자신의 성을 ‘Park’로 표기하는 사람의 경우 아들의 로마자 표기는 ‘Bak’로 표기해 부자의 성이 달라지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토론자들도 표준안의 적용 범위가 소극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경일 건양대 교수는 “(시안을) 그대로 수용하면 (국립국어원이) 이미 표기를 하고 있는 사람의 인명을 표기법에 맞게 고칠 것을 강제하거나 권유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국민 대다수의 인명을 표기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발상은 인명 표기 방법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했다. 표준안이 나온 것은 두 번째다. 2001년에도 표준안 시안이 나온 적이 있으나 성씨가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는 데다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란 때문에 논의가 중단됐다.

2007년 국립국어원이 6만3000여 명의 여권을 대상으로 121개 성의 로마자 표기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김씨는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Gim’이지만 실제 사용 비율은 0.6%에 그쳤다. ‘Kim’이 99.3%였다. 이씨도 원칙은 ‘I’이지만 이렇게 표기한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 ‘Lee’가 98.5%를 차지했다. 박씨는 ‘Bak’가 맞지만 1.8%에 불과했고 ‘Park’가 95.9%에 달했다. 이번 표준안은 ‘ㄱ’으로 시작하는 성씨 표기에 ‘G’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고 ‘ㅋ’으로 시작하는 성씨가 없다는 이유로 성씨의 ‘ㄱ’을 예외적으로 ‘K’로 표기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Lee’(이씨), ‘Park’(박씨)의 경우 예외를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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