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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마이너리티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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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마이너리티 리포트

입력 2007-06-19 03:02수정 2009-09-27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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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만 언뜻 보고는 그 영화가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를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일랜드’라는 영화가 대표적인 예죠.

복제인간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정체성 문제’라고 주제를 속단해 버렸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는 ‘인간의 자유’였습니다.

소재만으로 영화의 주제를 단정하는 일은 일제강점기에 쓰인 모든 시(詩)의 주제가 ‘광복의 희구(希求·바라고 구함)’라고 속단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2년 작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미래사회의 인권 탄압’을 주제로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는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들을 ‘미래에 분명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라고 단정해서 체포하는 미래사회의 범죄예방시스템을 뜨거운 논란거리로 제시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진정 ‘인권’일까요? 영화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세요.

주인공인 앤더튼의 고통스러운 선택 속에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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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도 예견된 걸까요?

[1] 스토리라인

2054년. 사람들은 이른바 ‘범죄예방시스템’을 숭배합니다. 이 시스템은 미래에 발생할 살인사건을 예측해 범인을 사전에 검거하는 첨단 시스템이죠. 3명의 예언자가 살인사건을 예측하면 범죄예방수사국은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범인을 체포하는 것입니다.

범죄예방수사국의 ‘존 앤더튼’(톰 크루즈). 그는 탁월한 솜씨로 ‘미래의 살인자’들을 속속 검거합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을 체포하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법무부 감찰관 ‘대니 위트워’(콜린 파렐)와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청천병력입니까? 어느 날 범죄예방시스템이 앤더튼 자신을 미래의 살인범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예지자 중 한 명인 ‘아가사’를 데리고 수사국에서 간신히 탈출한 앤더튼. 그는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면서 범죄예방시스템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앤더튼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 살인범의 운명에 점점 더 다가서고 맙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앤더튼은 과연 살인을 저지를까요? 자신의 아들을 납치해 살해한 유괴범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까요?

아닙니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합니다. 그럼으로써 범죄예방시스템의 예언을 부정하고 극복합니다. 앤더튼의 바로 이런 모습이야말로 영화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범죄예방시스템을 절대적으로 신봉했던 앤더튼이 그 시스템에 오히려 대항하면서 자신의 운명에 맞서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 말입니다.

당초 앤더튼은 ‘운명 결정론’을 굳게 믿었습니다.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를 운명이라면→그는 어떤 경우에도 그 운명을 거스르거나 바꿀 수 없으므로→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그 사람을 살인범으로 체포해도→살인범을 붙잡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이런 결정론적 세계관은 범죄예방시스템을 창안한 ‘버제스’(막스 본 쉬도브)라는 인물이 앤더튼에게 건네는 다음과 같은 대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신념은 선택이 아니다. 그건 너의 운명이다.(You don't choose the things you believe in. They choose you.)”

우리는 어떤 세계관이나 신념을 스스로 선택(choose)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의 운명에 이미 정해진 대로 그 신념을 갖게 되었을 뿐이란 얘기죠. 다시 말해 우리가 과거에 했던 행동, 지금 하고 있는 행동, 그리고 미래에 하게 될 행동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운명의 노트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고정불변의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앤더튼은 이런 ‘결정론’을 스스로 뒤엎습니다.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간 목숨처럼 지켜온 신념(결정론)을 스스로 극복하고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미래를 선택하는 한 인간의 모습, 즉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야말로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앤더튼이 예지된 운명대로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예언자 아가사가 앤더튼을 향해 속삭이는 말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집약되어 있는 대사입니다.

“넌 선택할 수 있어. 넌 선택할 수 있어.(You can choose. You can choose.)”

인간의 운명이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란 얘기죠.

[3] 알쏭달쏭 퀴즈

앤더튼은 예언된 운명을 거부하고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갑니다. ‘결정론’이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용감하게 탈출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던 앤더튼의 그 행위조차도, 사실은 앤터튼의 운명에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요? 정해진 운명을 극복하는 앤더튼의 모습 자체도 혹시 앤더튼의 더 큰 운명은 아닐까요? 인간이 제 아무리 ‘난 자유의지로 내 삶을 선택할 거야’ 하고 잘난 체 해봤자, 그가 앞으로 할 모든 종류의 선택은 이미 그의 운명에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요? 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해보세요.

여러분, 전지전능한 예언자 아가사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았나요?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까지도 일일이 내다보는 절대 능력의 소유자 아가사.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늘 슬프고 괴롭습니다. 누군가의 운명을 미리 안다는 건 그들의 고통스러운 미래를 미리 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한 치 앞 운명도 내다볼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 인간. 그래서 인간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지 모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정답은 다음 동영상 강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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