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57>석(釋)과 역(繹)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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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다’는 뜻을 가진 釋은 의미부인 변과 소리부인 역으로 구성되었다. 변은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들짐승의 발자국 모양을 그렸는데, 금문에 들면서 획을 조금 구부려져 발자국이 더욱 사실적으로 변했으며, 이후 지금처럼 굳어졌다.

들짐승의 발자국은 수렵 시절 그것을 辨別(변별)해 뒤쫓아 가며 사냥을 했기 때문에 변에 分別(분별)하다는 뜻이 생겼다. 변은 지금 부수로만 사용되지만, 悉에는 아직 원래의 의미가 남아 있다. 즉 悉은 변과 心(마음 심)으로 구성되어, 짐승의 발자국(변)을 마음(心)으로 헤아린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잘 알다’, 남김없이 ‘모두’ 헤아리다는 의미가 나왔다.

역은 소전체(오른쪽 그림)에서 위쪽은 目(눈 목)을 가로로 눕힌 모습이고 아래쪽은 幸(다행 행)으로 되었다. 目은 보다는 뜻을 가지고, 幸은 원래 수갑을 그려 죄인을 상징한다. 그래서 역은 ‘죄수를 감시하다’가 원래 뜻이다.

그렇다면 ‘자세히 관찰하다’는 뜻을 가지는 역도 釋의 의미결정에도 관여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釋은 짐승의 발자국(변)을 자세히 살펴(역) 변별하듯, 상세하게 풀어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을 풀어내다’는 뜻을 가지는 繹 또한 뒤엉킨 실((멱,사)·멱)을 자세히 살펴(역) 풀어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言(말씀 언)과 역이 결합된 譯은 ‘설문해자’의 풀이처럼 ‘이민족의 말을 풀어내는 것’, 즉 飜譯(번역)을 말한다. 한 언어를 또 다른 언어로 풀어내는 것은 至難(지난)한 작업으로 대상언어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함은 물론 대응 ‘어휘(言)’를 대단히 ‘섬세하게 살펴(역)’ 選擇(선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당나라 때 인도로 건너가 온갖 역경을 겪으며 구해온 불경을 19년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번역해 낸 玄장(현장) 법사의 번역 정신은 아직도 인류의 번역사에서 신화로 남아있다. 산스크리트 문자와 한자라는 완전히 다른 문자체계, 불교와 유교라는 전혀 이질적인 사상 체계 속에서 그토록 철학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들을 한자어휘로 완벽히 소화해 내고, 생소한 경험들을 친숙한 중국의 이야기로 변형시킨 그의 번역 솜씨는 지금도 여전히 모범이기 때문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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