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공개 ‘겸재 정선 구학첩’…완숙한 墨法 흠뻑 배어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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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謙齋 鄭歚)은 ‘박연폭포’ ‘인왕제색도’ ‘청풍계도’ ‘금강전도’ 등 많은 대작들을 그렸지만, 또 어느 화가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작은 그림들을 묶은 화첩도 많이 남겼다. 현재까지 알려진 화첩은 36∼74세 때 제작한 총 12권. 금강산을 비롯해 영남권 한강변 등의 실경산수를 연작으로 그린 이 화첩들 중 현재 ‘임진년 해악전신첩’ ‘영남첩’ ‘사군첩’ 등 3권만 소재 불명이나 나머지는 모두 전해져 온다.

학고재 화랑의 ‘유희삼매’전을 기획한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그림을 보고 단양사경을 그린 사군첩으로 짐작했으나 관아재 조영석의 유명한 발문인 ‘구학첩발(丘壑帖跋)’을 통해 그동안 문헌으로만 희미하게 전하던 구학첩의 일부로 결론지었다. 이로써 우리는 겸재의 13번째 화첩을 새로 알게 되었다”며 “‘구학첩’의 발견으로 겸재의 그림 중 그동안 빠져 있던 충청의 실경산수가 추가되었다”고 평했다.

‘구학첩’ 단양삼경은 충북 단양 읍내 정자를 그린 ‘봉서정’, 도담삼봉을 그린 ‘삼도담’, 단양팔경 중 하나를 담은 ‘하선암’의 3폭. 완성된 필법과 묵법으로 활달하고 그윽한 맛을 자아낸다. 겸재는 이 그림 옆에 자필로 제목을 적었다. 제작 시기는 1738년 정월 13일 이전, 즉 겸재의 나이 63세 또는 62세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우리나라 수입 서양화 1호로 기록될 ‘술타니에 풍경’과 함께 한국계 중국인 화가 김부귀(金富貴)의 ‘낙타도’와 18세기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인 ‘미인도’ 등 조선시대에 유입된 18세기 외국 그림 3점이 한꺼번에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이 그림들은 영·정조 시절 의관(醫官)이면서 서화수집가였던 석농 김광국이 자신의 소장품들을 묶어 만든 화첩에 들어있던 작품들이다.

술타니에는 오늘날 이란의 서북부 산악과 초원지대에 위치했던 페르시아의 고대 도시. 몽골제국 지배하에 있을 때 가장 번성한 중심도시였다. 멀리 우뚝 솟은 산을 배경으로 기슭 초원 아래 성곽으로 둘러싸인 고대 도시를 화면 중앙에 수평으로 배치한 이 동판화는 소품이지만 풍광의 광활함을 한껏 드러낸 작품이다.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제작자인 페테르 솅크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문화의 황금기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동판화가이며 지도제작자를 겸한 출판인”이라고 소개하고 “소장자였던 김광국이 어떻게 이 작품을 입수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으나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홍대용 일행을 따라갔다는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이때 구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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