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학민/뮤지컬 특징은 다양한 장르의 결합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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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각 일화당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태풍 ‘매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던 때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가롭게(?) 뮤지컬 공연이나 구경하고 있었다는 데에서 말썽이 시작됐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최고 공직자들의 공연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옮겨지는 듯하다.

▼뮤지컬 특징은 다양한 장르의 결합 ▼

노 대통령을 두둔하려던 모 장관이 “대통령은 오페라도 못 보느냐”는 식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 ‘장르를 잘못 언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뮤지컬을 오페라로 부른 것이 뭐 그리 큰 문제인가. 그 장관이 대통령이 본 공연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한 말이라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하더라도 뮤지컬은 노래와 춤, 연기를 섞어서 만드는 종합무대예술이라는 점에서 오페라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LG아트홀에서 공연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오페라라고 부르는 경우도 무수히 많이 본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뮤지컬과 오페라는 명확히 다른 장르다. 뮤지컬이 오페라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노래하는 배우가 마이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마이크를 쓰게 되면 배우가 노랫소리를 조그맣게 내도 이를 증폭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움직임과 연기가 자유로워진다. 결과적으로 뮤지컬은 오페라보다 역동적이고 빠른 동작과 호소력 있는 연기를 하는 데에 유리하다.

뮤지컬은 빠른 극 전개와 현대적인 감수성 등을 살려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에서도 진지한 오페라와 구별된다. 음악적으로도 쉽고 감칠맛 나는 대중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복잡하고 난해한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는 오페라와 다르다.

이처럼 오페라와 구별되긴 하지만 뮤지컬은 오페라, 나아가 다른 여러 장르들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아주 자유로운 장르다. 뮤지컬에는 필요하다면 어떤 형식이든지 포함될 수 있다. 비단 오페라뿐 아니라 연극이나 퍼포먼스 댄스 서커스 등 다양한 유사 장르들을 빈번하게 흡입하는 현상은 뮤지컬이라는 대중 엔터테인먼트만이 갖는 아주 편리하고 효과적인 장치다.

음악적으로 볼 때에도 뮤지컬은 클래식 음악의 복잡한 양식 및 기법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양한 유형의 음악을 사용할 수 있다. 가령 팝송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혹은 프랑스 샹송이나 요즘 유행하는 제3세계의 월드뮤직 민속음악 등이 다양하게 쓰일 수 있고 심지어 이것들이 한 뮤지컬 작품 속에 섞여 사용될 수도 있다.

‘인당수 사랑가’에는 장르들의 혼합 현상이 극대화돼 있다. 이 작품이 이상한 계기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필자에게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하나로 섞는 이른바 ‘퓨전’ 문화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하는 계기가 됐다.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장르들과의 혼합된 특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한마디로 창극과 뮤지컬, 인형극의 혼합이다. 창극 판소리와 국악기가 나오는 반면에 신시사이저로 대중음악이 연주된다. 인형극은 흡사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는 듯하고, 여장 남자들의 춤사위는 일본 가부키의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인당수의 주인공 심청이 사랑가의 주인공 성춘향과 섞여 있기도 하다.

이를 두고 제작자는 ‘퓨전’ 뮤지컬이라고 설명한다. 퓨전 뮤지컬은 뮤지컬의 전통 영역에 새롭게 서커스가 들어가는가 하면(델라구아다), 심지어 노래와 연극적 스토리 구조 없이 춤과 퍼포먼스만 있는 뮤지컬(난타)도 있다.

▼ 재해석 숙제 남긴 ‘인당수 사랑가’ ▼

하지만 ‘인당수 사랑가’의 퓨전주의는 원작 혹은 원 장르에 대한 무책임한 도용(盜用)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기존의 가치체계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찾고 재해석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작품이 원래 갖고 있던 정통성의 가치를 무시해서도 안 될 일이다. 또 원작을 해체했다면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새로운 의미 대신에 허겁지겁 다른 작품의 의미를 표절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인당수 사랑가’ 파문은 정치 외적으로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김학민 오페라 뮤지컬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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