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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목욕탕]한국 목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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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목욕탕]한국 목욕의 역사

입력 2003-09-04 16:18수정 2009-10-1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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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端午風情)


국내에 대중목욕탕은 언제 생겨났을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문화가 유입됐다는 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에 따르면 대중목욕의 전통은 신라시대부터 있었다.

한국입욕산업연구소 한영준 소장은 ‘집 밖에서 한 목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국내기록으로 동천과 북천에서 각각 목욕했다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의 이야기를 꼽는다. 동천에서 목욕을 한 박혁거세의 몸에서 광채가 났고 입술이 닭의 부리처럼 생겼던 알영은 북천에서 목욕한 뒤 완벽한 미인이 되었다는 것.

한 소장은 “그들의 목욕이 미용수단이든 왕의 의식수단이든간에 2000년 전 우리나라에서 목욕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며 “신라시대 때 대형 공중목욕탕이 절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설명했다.

집 밖에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하는 목욕의 풍습은 고구려에도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서천왕 17년(286)에 왕의 동생들이 온탕에 가서 무리들과 어울려 유락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인들은 목욕을 더 자주해 중국 송나라 문신 서긍이 고려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이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의 큰 내에서 남녀가 한데 어울려 목욕을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계곡과 냇가에서 대중목욕의 명맥은 이어졌으나 노출을 꺼리는 생활관습 때문에 남녀모두 옷을 입은 채 신체의 일부분을 씻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소장은 “1910년 이후 선교사들이 드나들면서 서양인을 상대로 욕실을 부대시설로 갖춘 호텔과 여관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일제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대중목욕탕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근대적 형태의 대중목욕탕은 1924년 평양에서 첫선을 보였고 행정관청인 부(府)에서 직접 관리를 맡았다. 서울에서는 1925년에 첫 대중목욕탕이 문을 열었고 1945년 이후 사설 대중목욕탕이 급속히 보급됐다.

현재 국내 대중목욕탕은 9900여개. 2001년 1만98개로 최고에 달했으나 동네목욕탕의 폐업이 늘어나고 스파와 사우나 찜질방 등으로 시설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은 목욕탕은 살아남기 힘든 추세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김수철 사무총장은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가던 80년대 후반부터 목욕탕은 욕탕 중심에서 한증실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고유의 목욕문화는 한때 일본인들의 관광이 붐을 이룰 정도였던 ‘때밀이’다. 오돌토돌한 비스코스 섬유로 만든 ‘이태리 타올’도 한국에만 있는 것.

‘때밀이’ 대신 ‘목욕관리사’를 정식 명칭으로 삼아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한국목욕관리사협회 강병덕 회장은 “때밀이가 발전한 것은 60년대부터이지만 정확히 언제 시작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었던 서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의 ‘목욕관리사’는 4만∼5만명가량. 취업률 100%에 한달 평균 300만∼400만원을 벌 수 있지만 중노동인 탓에 10명에 8명꼴로 도중하차 한다고 한다. 강회장은 “이전에는 목욕탕에 오는 사람의 10%가량이 때밀이에게 몸을 맡겼지만 요즘은 3∼4%로 줄었고 그마저도 마사지에 집중된다”면서 “요즘은 남자 목욕관리사들도 마사지를 배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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