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세대차 갈등]'속물 대 낭만' '억압 대 반항'

  • 입력 2002년 2월 19일 15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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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배우 제임스 딘은 반항하는 젊음의 상징으로 젊은 세대의 허무와 불안을 대변했다
청춘배우 제임스 딘은 반항하는 젊음의 상징으로
젊은 세대의 허무와 불안을 대변했다
세대간의 갈등은 인류가 태어나 가정과 사회를 이루면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나 이런 갈등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교 논리로 통제되던 동양 사회에서는 구미 나라들에 비해 세대 갈등이 덜 심각한 편이었다. 그러나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우리도 차츰 이런 갈등이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의 거울인 영화에 세대간의 갈등이 투사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유명한 영화는 구약성서의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를 현대화한 ‘에덴의 동쪽(1955)’일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화한 이 작품은 원죄의식과 부자간의 애증의 갈등이 빚어내는 비극으로 가족과 사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910년대 캘리포니아가 무대지만 시대를 뛰어 넘는 보편성으로 오늘날 우리 현실과도 유사하다. 이 영화에서 부권(父權)에 도전하는 동생 칼 역을 맡은 제임스 딘은 관객에게 남긴 강렬한 인상으로 그 후 니콜라스 레이 감독에 발탁되어 ‘이유 없는 반항’에 출연하게 된다.

‘이유 없는 반항’은 레이 감독의 원안을 스튜어트 스턴이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작품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하여 10대들의 문제를 자주 접하는 경찰이나 법원판사 학부모 문제청소년들을 광범위하게 접촉 면담해 생동감 있는 영화로 만들어냈다.

부활절 밤에 술에 취해 소동을 부리던 짐(제임스 딘)이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며칠 전 이 마을로 이사온 짐은 가정은 윤택하나 부모의 사랑에 굶주린 청소년이다. 파티에 가있던 부모와 조모가 뒤늦게 유치장에 달려와 소란을 피운다. 가족들은 짐의 탈선에 대해 책임 전가성 논쟁을 벌인다.

그날 밤 짐은 유치장에서 여러 ‘문제아’들을 만난다. 이들 불량청소년과 어울려 위험한 게임을 벌이다 친구 한 명이 경찰의 오발사고로 죽는다. 이 불행한 사건으로 짐의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 작품은 딘이 1955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개봉되어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딘은 저항하는 청춘의 상징으로 신화가 됐다.

두 작품은 모두 부자간의 세대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결국 이해와 화해로 끝나지만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제물로 바친다.

영화 속에 표현되는 부자간의 관계는 대체로 가치관이나 지배욕구 등의 갈등구조로 되어있다. 자식에게 아버지는 우상이거나 뛰어넘어야 할 실망스러운 존재이다.

‘자전거 도둑’ ‘철도원’ ‘챔프’ ‘클레이머 대 클레이머’ ‘오버 더 탑’ ‘풋 루즈’ ‘달을 쏴라’ 등에 나타나는 부친상은 폭압적 자세로 자식과 투쟁을 벌이거나 자식의 우상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사회제도 또는 적과 힘겹게 싸워 이기거나 패배한다.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는 이기적이며 불합리한 존재로 묘사되는 반면 자식은 사랑에 굶주려 아버지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문제를 일으킨다.

세대가 집단적으로 대립하는 공간인 학교를 무대로 하는 작품도 비슷하다.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폭력교실’ ‘언제나 마음은 태양’ ‘경계를 넘어서’ 그리고 국내에서도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피터 웨어 감독의 ‘죽은 시인의 사회’(1989)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인성교육보다는 지식교육을 폭압적으로 강요하는 기성세대와 여기에 힘겨워하면서 격렬히 저항하는 학생들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자녀 세대의 순수하며 낭만적인 애정관과 부모의 현실적이면서 이기적인 결혼관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다룬 작품도 있다. 이 소재는 동서양 모두에서 아주 흔하다. 에릭 시걸의 소설을 영화화한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 주연의 ‘러브 스토리’(1970)나 비비언 리와 로버트 테일러 주연의 ‘애수’(1941)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대부분 비극으로 끝맺고 있다.

부자간의 갈등이 아닌 모녀간의 갈등을 그린 매우 의미심장한 영화가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1977)는 모녀간의 애증을 다루고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피아노연주자 샤를로테(잉그리드 버그먼)는 남자친구가 암으로 죽자 매우 비통해 한다. 목사와 결혼해 시골에 살고 있는 큰 딸 에바(리브 울만)는 상심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샤를로테를 초대한다. 에바 역시 얼마 전 아들을 잃고 비통해 하고 있다. 모녀는 오랜만에 만나 서로를 위로한다. 그들은 잠시 슬픔을 잊고 과거 즐거웠던 시절을 회상한다. 에바는 어머니가 요양소에 맡겨놓은 뇌성마비 여동생을 어머니 몰래 자신의 집에 데려와 함께 지내고 있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죄책감이 든 샤를로테는 에바와 심하게 다툰다. 에바는 그동안 가슴에 품어 두었던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을 털어놓게 되고 샤를로테는 이를 못 견뎌 한다.

그날밤 샤를로테는 뇌성마비 딸을 보게 되고 딸로부터 절규에 가까운 원망을 듣는다. 그녀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급한 일 때문에 빨리 돌아오라는 전갈을 딸집으로 전보로 쳐달라는 전화를 한다. 그러나 이를 에바가 엿듣는다. 다음 날 샤를로테는 전보를 핑계로 딸의 전송을 받으며 떠난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에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상처를 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식들이 오히려 어머니에 관용적인 데 비해 어머니는 완고하기만 하다. 어쩌면 서로 이해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세 모녀의 처절한 갈등을 통해 삶의 진실을 전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베리만은 항상 인간 본성이나 가족 관계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결국 부모자식 간의 갈등구조는 원초적인 것이며 그래서 인간은 윤리라는 굴레를 만들어 완충역할을 맡겼는지도 모른다.

정용탁(한양대 교수·연극영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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