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화안내 프로들 "차라리 영화 한 편 다 보여주시지요"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15분


영화를 본 사람이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지켜야할 예의가 하나 있다. 영화에 대한 얘기를 꼬치꼬치 털어놓지 않는 것. 결과는 물론 중간 중간 장면에 대해서 다 알고나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지켜지는 이런 묵계가 매주 일요일 방영되는 방송 3사의 영화안내 프로그램에서는 무시되고 있다. KBS2 ‘시네마데이트’(오전 8시50분)와 낮12시10분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SBS ‘접속 무비월드’, MBC ‘출발 비디오여행’은 개봉을 앞두거나 상영중인 영화들을 통째로 편집해서 방영하곤 한다.

10월 29일만해도 ‘시네마데이트’는 전날 개봉한 한국영화 ‘싸이렌’을 편집해 영화내용의 대부분을 소개했다. ‘접속 무비월드’는 개봉 1주일 밖에 안된 ‘글루미 썬데이’에 숨은 정신분석학적 의미를 찾는다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화의 전 내용을 다 소개했다. ‘출발 비디오여행’ 역시 개봉을 앞둔 ‘집으로 가는 길’과 역시 개봉 1주일째인 ‘화양연화’의 주요장면들을 장시간 내보냈다.

이런 현상은 한국영화에선 더욱 심하다. 지난 주말 개봉한 한국영화 ‘하면 된다’의 경우는 경쟁이라도 하듯 개봉 2주전부터 자세한 줄거리 뿐만 아니라 폭소를 유발하는 장면이란 장면을 낱낱이 내보냈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까지 내보낸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이런 횡포는 결국 잠재적 영화관객에게 이 영화의 코믹한 상황묘사와 허를 찌르는 반전을 맛볼 기회를 박탈하는것이나 다름없다. 또 영화사 입장에선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흥행 밑천이 다 드러나는 셈이다.

이처럼 상궤를 벗어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들 프로그램들이 ‘누가 더 많이 보여주나’하는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영화사측이 준비한 홍보용 화면이 아닌 전 영화가 통째로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영화사 관계자들은 “영화홍보를 위해 이런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지만 제작진의 양식만 믿고 맡겼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같은 영상매체인 방송에서 영화 줄거리를 지나치게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영화의 지적재산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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