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황지우의 희곡 '오월의 신부'

  • 입력 2000년 5월 9일 19시 53분


연극 ‘오월의 신부(新婦)’ 공연 준비가 한창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야외극장.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우면산 숲 속은 도심에선 접하기 힘든 알싸한 꽃내음으로 가득차 있다. 시인 황지우는 매일 이 곳에 들러 자신의 첫 희곡이 무대에서 공연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연신 담배를 입에서 뗄 줄 모른다.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원죄의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사람들이었지요. 80년 ‘광주’와 같은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 뒤통수 치듯이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광주민중항쟁’을 그린 예술작품의 대부분은 ‘개인’보다는 ‘집단’에 초점이 맞춰졌다. 민중적, 계급적 관점이 바로 그것. 그러나 ‘오월의 신부’는 광주라는 거대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 ‘개인’을 집중 조명한다. 극은 강혁 오민정 김현식 등 시민군 지도부의 애달픈 러브스토리로 진행되며, 도청에 남게 된 사람들 개개인의 사연과 심리적 번뇌를 조명한다. 황지우는 “80년 광주를 넘어, 보편적 인간의 내면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계엄군의 최후통첩 시간이 임박한 시간에 도청 문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는 장신부. 그는 머리에 총구를 겨눈 허인호에게 차라리 고마워하며 도청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순교’의 기회를 놓친 장신부는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20년간 침묵으로 지낸다. 장신부는 자신도 상처받았지만, 광주에 대해 더 큰 빚을 진 느낌을 갖고 있는 이 시대 지식인들의 상징이다.

그러나 ‘오월의 신부’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로 관객들에게 다가선다. 연출을 맡은 김광림은 마지막 순간 도청에서 벌어지는 현식과 민정의 결혼식 장면에서 객석과 무대에 온통 꽃잎을 날리는 등 야외공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예정.

강신일 김뢰하 김세동 이대연 등 386세대 배우들은 공연에 앞서 지난달 23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아 각각 자신이 배역을 맡은 시민군의 묘비 앞에 서서 참배했다. 오후 8시. 02-762-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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