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시대 ‘독서하는 사무라이’[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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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전국시대에서 에도시대까지

에도 시대 말기 화가 와타나베 가잔은 ‘독서하는 사무라이’ 또는 ‘칼 찬 사대부’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그가 그린 칼을 차고 있는 상인의 모습.
에도 시대 말기 화가 와타나베 가잔은 ‘독서하는 사무라이’ 또는 ‘칼 찬 사대부’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그가 그린 칼을 차고 있는 상인의 모습.
그림은 자기 마음껏 음미하는 게 일단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그림은 배경 지식을 통해 더 풍부하게 음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음 두 그림이 그 예이다. 첫 번째 그림의 주인공은 쇼군(將軍)은 아니었지만 무로마치(室町) 막부 배후에서 실권을 장악하여 “전국시대의 막을 연 남자(戰國の幕を開けた男)”로 일컬어진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1466∼1507)의 양자 호소카와 스미모토(細川澄元·1489∼1520)이다. 전쟁과 정쟁을 겪은 사람답게 말을 타고 칼을 찬 무장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무인(武人)으로서 정체성을 한껏 발산하는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앞으로 도래할 에도(江戶) 시대 회화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가노 모토노부(狩野元信·1476∼1559)의 작품이다.

가노 모토노부가 그린 칼 찬 무장의 그림에는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모습이 잘 표현돼 있다.
가노 모토노부가 그린 칼 찬 무장의 그림에는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모습이 잘 표현돼 있다.
전국시대가 끝나자 에도 막부 시대가 시작된다. 평화가 찾아와서 좋은 시대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모순에 찬 시대이기도 하다. 평화가 끝없이 계속되자 사무라이들은 무사로서 정체성을 실현할 길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에도 시대에 야마모토 쓰네토모(山本常朝·1659∼1719)가 쓴 ‘하가쿠레(葉隱)’는 사무라이가 따라야 할 마음 자세를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사무라이라면 긴장을 풀지 말고 늘 전투와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역시 평화가 하염없이 지속되는 에도 시대에 사무라이들이 자칫 무사의 정신을 잃을까 우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학자 박훈은 최근 출간한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라는 저서에서 에도 말기쯤 되면 사무라이들이 단순히 무사라기보다는 사대부 정신을 장착한 “독서하는 사무라이” 혹은 “칼 찬 사대부”로 변모했음을 강조한다. 박훈에 따르면 이 사무라이들의 정치의식을 빼놓고는 메이지 유신의 발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에도 말기의 사무라이들은 칼을 찼지만, 사대부처럼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해 열렬히 자기 의견을 표명했고, 이는 일본의 근대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염두에 두면, 두 번째 그림을 좀 더 풍부하게 감상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에도 시대 말기의 화가 와타나베 가잔(渡邊화山·1793∼1841)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박훈이 말한 “독서하는 사무라이” 또는 “칼 찬 사대부”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그의 인생은 싸움보다는 공부로 점철되어 있다. 다카미 세이코(鷹見星皐)에게 ‘유학(儒學)’을 배우고, 다니 분초(谷文晁)에게 그림을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을 알기 위해 ‘난학(蘭學)’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정치에도 지극한 관심을 보여서, 이른바 쇄국 정책에 반대하고 개국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정치적 곤경에 몰려 할복할 때는 ‘불충불효(不忠不孝)’라는 글씨를 남겼다.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주장 중 하나는 일본의 근대인 메이지 시대가 그 이전 에도 시대로부터의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와타나베 가잔은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으로 유명해서, 메이지 유신 이후 수신(修身) 교과서에 실렸으니, 실로 시대의 변화는 생각보다 중첩적이고 복합적으로 일어난다고 하겠다.

와타나베가 그린 그림의 주인공은 오노 겐주로(大野源十郞)이다. 오노는 와타나베가 모시던 다하라(田原)번의 번주(藩主) 미야케 야스나오(三宅康直)의 재정을 도운 상인이다. 상인이면서 칼을 차고 있는 것은 궁핍한 번 재정을 살리는 데 공헌한 걸 인정받아 무사의 대우를 받은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이 역시 상인이 돈으로 낮은 신분의 무사가 되거나, 큰 상인들이 무사 대우를 받곤 했던 당시의 사정을 반영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독서하는 사무라이#와타나베 가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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