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페스트’[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28〉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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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나 병원균 때문에 위기에 처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소설이 있다.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그 소설이다. 거기에 묘사된 공포와 히스테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것들과 거의 판박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베르나르 리외다. 그는 자신이 페스트에 감염될 수 있음에도 밤늦게까지 환자를 돌보는 의사다. 그는 프랑스 기자가 영웅이 되고 싶어 그러는 거냐고 냉소적으로 묻자, 이것은 ‘성실성의 문제’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을 치료하고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 의사의 직분인데 영웅주의가 무슨 상관이냐는 거다. 그에게는 오히려 시청의 말단 서기인 조제프 그랑 같은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다. 그랑은 근무가 끝나고도 보건대의 서기 역할을 하며 인구 과밀 지역의 예방 작업을 돕는다. 거창한 생각 없이 묵묵히 사람들과 연대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그러한 소시민들이 의사의 말대로 진짜 영웅일지 모른다.

그러나 영웅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사를 영웅으로 보이게 한다. 그의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몇백 km 떨어진 요양원에 가 있다. 그가 환자들을 돌보는 사이, 그의 아내는 죽는다. 그가 도시를 덮친 페스트와 싸우는 것은 이러한 실존적 상황에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처음으로 알리고 경고했지만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중국 공안, 즉 경찰에 불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던 젊은 의사 리원량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세계는 우한이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아무런 대비도 못 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지 모른다. 애석하게도 그는 환자를 치료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고 동료 의사인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의사였다는 점에서 그는 ‘페스트’에 나오는 리외를 닮았다. 그도 영웅주의에서 행동한 게 아니었다. 그저 성실했을 따름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알베르 카뮈#페스트#코로나바이러스#리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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