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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열망으로 뭉친 전사들, 절벽 오르며 사격-폭파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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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열망으로 뭉친 전사들, 절벽 오르며 사격-폭파 훈련

유원모 기자 입력 2018-02-28 03:00수정 2018-02-28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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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3·1절 99주년]
<上> ‘독수리 작전’ 훈련 현장 첫 확인
광복의 전진기지 中시안을 가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지난달 28일 광복군 대원들이 교량 건설, 절벽 오르기 등 훈련을 했던 협곡을 가리키고 있다. 시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미국 군관들의 요청에 따라 비밀훈련을 받은 학생들을 실제로 실험해 볼 목적으로 두곡(두취)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40리 떨어진 종남산(중난산)의 한 고찰(비밀훈련소)까지 자동차로 갔다. 산기슭까지 가서 다시 5리가량 걸어서 도착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1945년 8월 ‘백범일지’에는 이 같은 기록이 나온다. 이 비밀훈련은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가 공동으로 진행한 ‘독수리작전’이다. 대원들이 독수리처럼 낙하산을 타고 한반도에 침투해 정보수집과 거점 확보 등을 통해 광복을 실현한다는 군사계획이었다.

당시 백범이 찾아간 학생들은 그해 5월 11일부터 8월 4일까지 3개월간의 교육을 끝낸 1기 광복군-OSS 대원들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군함도’에서 광복군-OSS 대원으로 나오는 박무영(송중기 역)의 실제 모델이다.


“평가단지는 독수리기지 훈련본부에서 26km 떨어져 있는 버려진 절에 마련했다. 훈련본부에서 트럭을 타고 도로 끝에서 내려 1.6km 정도 되는 좁은 길을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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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의 기록과 같은 내용이 미국 OSS의 기밀문서 ‘독수리작전 관계서신 및 평가계획’에도 있다. 독수리기지 훈련본부는 중국 시안시 두취진의 광복군 제2지대 본부와 같은 건물을 썼다. 본보는 지난달 28일 백범일지와 OSS 자료를 바탕으로 훈련장소를 추적해 확인했다.

○ 절벽 오르고 사격, 폭파 훈련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황허강을 경계로 화북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과 마주한 최전선이 됐다. 시안 시내에서 남쪽으로 19.5km를 내려가면 광복군 제2지대 본부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20여 km를 이동하자 국가산림공원으로 지정된 중난산 입구가 나타났다. 찻길이 정비돼 있었지만 2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도로가 마비됐다. 백범이 갔던 방법 그대로 5리(약 1.9km)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민가 30여 채를 지나고 나니 미퉈구사라는 절이 나왔다. 588년 수나라 때 세워진 이 절은 1939년 중국 국민당 중앙군관학교 제7분교(황포군관학교의 후신)가 사용한 곳이다.

OSS의 ‘독수리작전’ 문건에는 교량 건설, 폭파, 절벽 오르기, 사격 등 실제 훈련은 이 절에서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진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절을 끼고 500여 m 더 올라가니 가파른 협곡이 등장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협곡을 가리키며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절벽 두 개가 마주하고 있어 야전 훈련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1945년 광복군 대원들이 치열한 특수 훈련을 진행한 바로 그 장소”라고 말했다.

“종남산(중난산) 봉우리에서 오로지 밧줄만을 지닌 청년들이 매듭을 짓고, 절벽을 오르내렸다. (미국 교관에게) ‘중국 학생들에게도 발견하지 못한 해답(성과)을 귀국(貴國) 청년들에게서 발견했다. 참으로 전도유망한 국민이오’라는 찬사를 받았다.”(백범일지)

백범이 표현한 그대로였다. 지금은 일부 등산객들만 찾지만 73년 전 나라를 잃은 한국 청년들의 뜨거운 발자취는 남아 있었다.

○ “미완의 계획, 기억은 완성돼야”

1945년 광복군 대원들이 중국 시안 광복군 제2지대 본부에서한국 미국 중국 구기를 들고 도열한 모습.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제공
광복군-OSS 대원들은 야전훈련뿐 아니라 엄격한 이론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론 교육은 광복군 제2지대 본부에서 진행됐으며 심리전술, 비행장 정보 같은 첩보 교육을 비롯해 위장술과 정보원 모집이 포함된 작전 교육 등으로 구성됐다. 1기 교육생 가운데 12명이 탈락해 최초 모집 50명 중 38명의 정예 대원만이 1945년 8월 4일 1기 광복군-OSS 훈련을 마쳤다. 이들 중에는 장준하(1918∼1975)와 광복 후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1920∼2011)이 포함됐다.

실력과 의지를 모두 갖췄던 광복군-OSS 대원들의 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허망하게 항복을 선언하면서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은 한국광복군을 승전국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광복군의 역사는 지금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미퉈구사 훈련지에는 광복군-OSS의 훈련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두취진의 한국광복군 2지대 본부에는 2014년 이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다. 하지만 광복군-OSS 훈련장소라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반쪽짜리 역사만 기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교수는 “광복군-OSS의 훈련 장소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독립을 이루려 했던 한국사의 가장 의미 있는 장소 중 한 곳이다”며 “광복군-OSS 훈련장소를 기억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관리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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