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톡톡]“축구 선수인지 연예인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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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한국 축구 팬들이 뿔났습니다. 최근 국가대표팀의 부진과 비매너에 위태롭던 팬심마저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국내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큰 사랑과 지원을 받고도 정신 못 차리는 한국 축구는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요. 팬들이 ‘사랑의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
 
졸전의 연속

“이란-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월드컵 예선 2연전은 최악이었습니다. 선수들 간 호흡이 엉망인데도 감독은 어떠한 전술 변화도 주지 않은 채 넋 놓고 있었죠. 추석 황금연휴 때 러시아와 친선경기를 한다는데 볼지 말지 고민이에요. 경기를 보다가 화가 치밀어 친척들이랑 싸울까 봐요.”―김지용 씨(45·개인사업)

“대표팀 훈련 기간이 짧다지만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국가대표팀도 해외파와 국내파 선수들이 모여 짧은 기간 발을 맞추고 출전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술 이해도가 높고 개인기가 좋아 수준 높은 경기를 할 수 있는 거죠. 한국 대표팀은 실력도 들쭉날쭉하고 정신력도 낮아 이도저도 아닌 겁니다.”―정모 씨(32·조기축구회 회장)

“예선전을 통해 한국 축구가 뒷걸음질 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2년 9개월간 대표팀을 맡으면서 한국 축구 특유의 ‘투지, 속공, 빠른 역습, 압박’ 등 특징마저 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본선 진출은 그간 쌓아온 저력 때문에 운 좋게 성공했지만요.”―김대길 씨(KBSN 축구 해설위원)

“가족들이 모두 함께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전을 관람했어요. 6만 관중이 2시간 동안 목이 터져라 응원했죠. 그런데 김영권 선수가 ‘홈 관중의 함성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다’라고 말하다니 이게 선수가 할 얘기인가요? 팬들이 열 받는 부분은 선수들의 태도예요. 이제 대표팀 경기는 안 볼 겁니다.”―이모 씨(40·회계사)

“흔히들 ‘공이 와야 뛴다’며 선수들의 불성실성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선수로서 그런 시각은 반대합니다. 선수들이 90분 경기에 평균 9∼11km를 뛰는데 메시는 6km를 뛰어요. 쉼 없이 뛰는 체력을 강조할 게 아니라 창의력과 기술 등 실력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손오영 씨(25·독일 ‘본SC’ 4부 리그 선수)
 
흔들리는 팬심
 
“요즘엔 대표팀 경기는 월드컵 본선 정도만 챙겨봐요. 그 대신 해외 리그 경기를 즐겨보죠. 박진감 넘치고 시간대(오후 10시 이후)도 맥주 한잔 마시며 즐기기 좋죠. 국가대표팀은 해외파, K리거 등이 섞여 있어 실력 차도 크고 손발이 안 맞아 경기가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요.”―김정후 씨(27·PD 지망생)

“어린 선수일수록 경기를 무슨 연예인이 콘테스트에 참가한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데만 관심을 쏟는 것 같아요. 슛을 쐈다가 실패하면 죄인이 되어 버릴까 봐 주어진 기회까지 피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고요. 계산 없이 경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아쉽습니다.”―오모 씨(25·대학생)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코뼈가 부러진 채 타이거마스크를 쓰고 뛰던 김태영 선수,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피를 흘리면서 경기장을 누비던 최진철 선수 등을 볼 때 정말 축구가 매력 있는 경기라는 걸 느꼈죠. 부상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하는 모습이랄까…. 요즘은 돈벌이에만 급급한 것인지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모습이 아쉽습니다.”―김모 씨(26·학생)
 
정신 좀 차려야

“유럽의 3대 리그와 비교해 K리그는 플레잉타임(볼이 굴러다니는 시간)이 3, 4분 정도 짧습니다. 볼 터치 횟수는 프리미어리그는 550∼600개, 한국 팀은 350∼400개 정도죠. 그래서 우리 축구가 긴박감이 떨어지는 겁니다.”―신문선 씨(59·명지대 스포츠기록분석학과 교수)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선수와 팬들 모두 한국 축구를 과대포장하기 시작했어요. 2005년 박지성과 이영표 등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선수들 사이에선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덩달아 팬들도 눈이 높아졌죠.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리그에서 뛰는 해외파가 많아진 건 큰 의미가 없어요.”―양모 씨(40대·축구 관계자)

“의리 중심의 선수 선발 방식은 대표팀을 망치는 길입니다. 예전에 모 감독이 학교 후배들 경기 실적 채워주려고 실력 안 되는 선수들 뛰게 해서 비난을 받았잖아요?”―정민배 씨(40대·자영업자)

“축구협회 등 행정가들이 돌려 막기 식으로 직책을 맡고 있어요. 협회가 뽑은 감독이 사임한 뒤 또 협회 직원으로 들어가고…. 제자리걸음인 셈이죠. 고인 물이 썩어간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주형서 씨(29·회사원, 조기축구회 회장)
 
툭하면 ‘외국인 감독’?

“상당수 국가대표팀 선수가 해외파인데 해외 명장 정도 돼야 이들을 통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감독에 대한 불신으로 기강이 엉망이라는 의혹이 있으니까요. 거스 히딩크 감독처럼 기 싸움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심판에게 대차게 영어로 항의하는 감독과 함께해야 해외 무대에서 자신감 있게 뛸 것 같습니다.”―김한솔 씨(39·직장인)

“우리 축구 역사가 길지 않은데, 자국 감독이 팀을 이끌어야 한국다운 국가대표팀이 꾸려질 거라고 봐요. 독일은 요아힘 뢰프 감독이 10년 이상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데 사명감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거든요. 축구협회도 신태용 감독 선임에 대해 책임감 있는 입장을 보여줬어야 했어요. 늑장 대응이 히딩크 감독의 재기용설을 부채질한 셈입니다.”―김윤기 씨(26·백제예술대 2학년)

“한국은 감독에게 너무 인색해요. 히딩크 감독도 처음엔 ‘오대영’(5 대 0)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잖아요. 슈틸리케 감독은 ‘갓틸리케’라며 치켜세우더니 나중엔 ‘나갈리케’라고 하고…. 신태용 감독이 쓰러져가는 초가집을 겨우 일으켰는데 지금 감독을 바꾸는 건 말이 안 되죠. 숟가락 얹겠다는 건데….”―김창균 씨(23· 축구 블로그 운영자)
 
묻지마식 잔소리 이제 그만

“일부 축구팬은 히딩크를 대표팀 사령탑으로 모셔 달라며 청와대 청원에까지 올렸더군요. 일부 청원 글은 ‘베스트 청원’에까지 올랐고요. 좀 지나친 것 아닌가요? 예전에는 축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이젠 접었어요. 깡패 커뮤니티라 불릴 정도로 욕 일색이라 거북한 곳이 많아요.”―김진환 씨(30·서울 중랑구)

“축구는 좋아하는 팀과 선수 편을 들며 싸우는 것도 재미예요. 그러니 팬들의 간섭을 마냥 비판할 순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선수 선발 방식을 두고 억측을 하는 등의 관심은 자제해야겠죠. 선수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까지 파악하는 건 감독이니까요.”―이후민 씨(32·직장인)

“프로팀 선수로 활동할 때 ‘○○야, 공 ○○한테 패스해’, ‘빨리 주라니까 왜 못 해’라는 야유가 가장 얄미웠어요. 누군 패스하기 싫어서 안 하나요? 높은 관중석에서는 선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니 다들 ‘입으로 국가대표’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아요.”―유창균 씨(26·전 울산현대FC 선수)

“편파 판정이나 잘못된 전술 등에 대한 비판은 팬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묻지 마 식 꼰대 지적’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잔디 탓’을 하는 손흥민 선수에게 ‘그 옛날 황선홍 선수는 물에 잠긴 공을 발리슛으로 띄워 골을 넣었는데, 너는 웬 잔디 탓이냐’라는 반응 같은 것들요.”―정모 씨(32·조기축구회 회장)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거나 거칠게 응원하는 팬들의 관람을 막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어요. 최근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나치 제스처를 취한 외국인 팬들에게 경기장 출입을 영구적으로 금지한 것처럼요. 더 강력한 처벌책을 마련해 폭력적인 응원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김민율 씨(20대·회사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손유경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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